조영애 호주 웨이블리한글학교장, 한글 지킴이로 핀 보람 37년
“한글학교는 뿌리 교육의 산실…한글학교 교사 된 제자들 뿌듯”
“한글학교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을 하나만 꼽긴 어렵습니다. 매 순간이 보람이었기에 37년을 한결같이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14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재외동포청 주최 한글학교 교사 연수 개막식에서 참가자 대표로 인사말에 나선 조영애(61) 호주 웨이블리한글학교 교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7년을 회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해외 한글학교 교사 중 최장기 활동이라는 이력을 지닌 조 교장의 삶에는, 사랑을 따라 떠난 이역만리에서 ‘한글 지킴이’로 우뚝 선 여정이 담겨 있다.
대학생 시절, 연인이었던 남자친구가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떠나며 뜻밖의 이별을 겪은 그는, 우연한 재회 끝에 대학 졸업과 동시에 호주 이민을 결심했다.
“꿈꿔오던 오스트리아 빈으로의 유학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 눈물을 머금은 채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 제 삶 전체가 된 것이 바로 한글학교 활동이에요.”
호주 멜버른에 정착한 그는 1988년 한글학교 교사로 활동을 시작했고, 1991년 문을 연 웨이블리한글학교를 20여 명 학생과 함께 일구기 시작했다. 이후 이 학교는 현재 학생 수 300명이 넘는 호주의 대표 한글학교로 성장했다.
조 교장은 “한글학교는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정체성을 키우는 뿌리 교육의 산실”이라며 “역사와 문화를 배우며 자긍심을 갖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에너지를 얻고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글학교 교사가 된 제자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호주 한인음악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전공인 작곡을 살려 학교 내 어린이합창단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음악회 수익금 6천 달러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돕는 데 기부했다. 조 교장은 “학교 재정도 넉넉하진 않지만, 전쟁으로 고통받는 또래 친구들을 돕는다는 취지에 아이들도 신나게 동참했다”고 전했다.
오는 27일에는 6·25전쟁 75주년을 기념해 호주 전쟁기념관에서 참전용사 초청 음악회도 준비하고 있다.
조 교장은 “37년간 매주 일요일 수업을 한 번도 쉰 적이 없어 주말에 가족 여행을 한 번 못 갔다”며 “남편이 ‘주말학교에 미쳤다’고 할 정도”라며 웃었다.
그는 한글학교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가고 싶은 학교와 선생님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대단한 수업보다는 아이들이 즐겁게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게 먼저예요. 그게 교사 역할의 출발점입니다.”
웨이블리한글학교는 태권도, 축구, K팝 댄스, 합창단 등 특별활동반을 운영하며 아이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그는 “한글 배우기 싫다던 아이들도 특별활동 때문에 일찍 나오는 걸 보면 흐뭇하다”고 말했다.
조 교장은 “한글학교는 교사가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며 “교실 환경보다 중요한 건 교사의 눈빛과 진심”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지난 37년이 모두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으며, 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신 학부모들의 신뢰와 헌신적인 교사들의 노력이 큰 힘”이라고도 했다.
사랑을 찾아 떠난 이민 길에서 한글 교육에 평생을 바친 그녀의 삶은 재외 동포 사회에서 한글이 단순한 언어를 넘어, 한민족의 혼과 정체성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재외동포청 홈페이지의 ‘스터디 코리안’ 콘텐츠를 수업에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아이들에게 유용한 수업 자료들이 많이 올라와 큰 도움을 받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 교장은 전 세계 한인 청소년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어디에 살든 여러분은 한국인의 피를 이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랑스러워하세요. 절대 기죽지 말고,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