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구원의 삶입니다.
동시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고난의 삶이기도 합니다.
이 두가지가 함께 있지 않으면 온전히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고난 주간에 우리는 고난, 또한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5대손이고 현재 중화복음신학원 원장인 제이미 테일러는 자신들의 선조나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깨달은 부흥의 세 요소로 ‘말씀과 기도와 고난’을 꼽았습니다.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평신도로 선교사님을 돕다가 나중에 신학과정을 마치고 목사가 되신 분입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 사역 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기에 빵을 받아다가 장터에 나가 좌판에 벌여놓고 파셨던 적이 있으셨습니다.
삼일째 되던 날, 할머니가 “여보, 우리 돌아가요” 하셨답니다, 그 말에 할아버지께서 즉시 좌판을 정리하고 교회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굶어 죽을 각오를 해야 할 만큼 힘든 일이었지만 할아버지는 그 결단을 하셨고, 제게는 말할 수 없는 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 때 교회를 지키시다가 순교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영적 유산으로 저는 비교적 일찍 돌짝밭 사명이 귀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은퇴할 때가 되어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가장 큰 돌짝밭 사명이 무엇인가 돌아보니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는 것, 하나되기 힘든 이들과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이 가장 큰 돌짝밭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그것이 말할 수 없는 복이었습니다.
지금 중동에서 사역하시는 백부장선교사님이 선교선 한나호 선장이었던 때, 한번은 한국으로 오는 항해 중 태풍을 만나 사투를 벌이다가 엔진이 꺼져 버리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태풍에 배는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엔진이 껴졌으니“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에 모두 다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 때, 백부장선교사님 마음에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리자’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찬양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쓰러져있던 선교사님들이 하나 둘 일어나 함께 찬양하는데 점점 마음이 담대해지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과 구원을 외치게 되더랍니다. 그 후 식욕이 돌아와 식사를 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엔진이 다시 가동이 되고 한국에 도착했는데, 배 안에 남은 음식이 없었답니다. 믿음 충만하니 식욕도 충만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포함한 모든 일이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일에 유익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 보다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여 주 예수님을 만날 때, 그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면 여전히 로마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이 있을 것입니다. (요 20:24-29).
그러나 예수님은 피해자가 아니십니다.
그는 승리하신 유다의 사자이시며, 우주의 상속자십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