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높은 인기를 얻었던 독일 혼성 그룹 보니엠(Boney M)이 부른 히트곡 중에 “Rivers of Babylon”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경쾌한 디스코풍의노래이지만 실상 그 가사는 바벨론 포로기에 처해 고난 받던 히브리 노예들의 슬픈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 Zion…”
이어지는 시편 가사는 이러합니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 시 137:1~6
군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고된 훈련 뒤 브레이크 타임이 되면 교관들은 재미 삼아 아무나 지적하면서 “노래 일발 장전!”을 외치곤 하였습니다. 당시엔 정말아는 노래가 찬송가나 데모가 밖에 없었던 저는 그 때마다 늘 난감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저는 정해진 기간만 채우고 제대하면 끝이었기에 젊은 날의 한 에피소드로 기억할 뿐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었던 히브리인 노예들의 사정은 이와 전혀 달랐습니다. 나라를 잃고 정든 고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끌려와 노역을 해야했던이들은 언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일을 시키던 노예 감독이 자기들을 즐겁게 하도록 아무 노래나 한 자락 불러보라고 합니다.
히브리인들이 알고 즐겨 불렀던 노래라고는 온통 하나님에 대한 찬양 뿐인데 하나님에게 불러 마땅한 찬양을 ‘자기들을 황폐하게 한자’들의오락을 위해 불러달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는 있지만 노래를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기가 막히고, 또 이역만리에 두고 온 성전이사무치게 그리워 시편 기자는 순간 울컥 눈물을 쏟고 맙니다.
엊그제 저희 교회에서 뜻하지 않게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여 결국 모두의 안전을 위해 수요예배 전체를 혼자 인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배 드릴 때는 성령님의 함께 하심이 있어서 몰랐는데, 막상 오늘 아침 시편 137편 큐티 말씀을 펼치고 나니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들이 다 함께 시온 성전에 모여 힘차게 예배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마음이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내가 성전을잊어 버리거나 예배드리는 것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 한다면 어떤 저주가 쏟아지더라도 달게 받겠다는 시편 기자의 각오가 오늘 새롭게 가슴에 다가옵니다.
거룩한 슬픔 (Godly Sorrow)는 우리 신앙에 유익을 줍니다. 온갖 제약과 핍박이 주어지는 슬픈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게 하고, 결국은그러한 슬픔이 없는 영원한 하늘 나라를 소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우리를 사로잡은 자”의 정체는 계속 바뀌어 왔고 또 계속 바뀌어갈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의 분열로, 동성애로, 이단의 도전으로, 재정 위기로 또 그 밖의 다양한 죄악의 모양으로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는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님 주신 약속을 철저히 신뢰하며 나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