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프랑스 군인들이 파리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 군인들 중에는 일본군에게 너무 고문과 학대를 당해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기억상실증에 걸렸어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서류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문제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수십명의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완전히 잃어버렸는데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어떻게 부모를 찾아줄 것인가 고민을 하던 프랑스 정부에서 묘안을 짜냅니다.
파리의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에다가 기억 상실증에 걸린 군인들을 다 모아놓고, 전쟁에 나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들을 둔 부모들을 초청했습니다. 부모들이 관중석에 앉았을 때, 컴컴한 무대 위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군인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 나옵니다.
그가 무대 한가운데에 섰을 때,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비춰줍니다.
그 군인은 제자리에서 한바퀴를 돌며 자기 전신을 다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저를 아시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제가 누군지 저는 모릅니다.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저를 아는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에 자기를 찾지 않으면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박감에 사로잡혀서내가 누굽니까? 나는 누굽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렇게 한 군인이 ‘내가 누군인가?’를 질문하고 나가면 다른 군인이 또 올라와서 “나는 누구입니까? 가르쳐 주세요. 내가 누군지 가르쳐 주세요!”절규하고 지나갑니다. 이처럼 군인들이 올라오고 나가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석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젊은 군인들을 보면서, 전쟁의 비참함을 느끼고, 그 젊은이들이 받은 고난의 크기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앞으로 저들이 살아나가야 할 인생이 너무도 불쌍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내가 누굽니까?”세상에 이렇게 슬픈 질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자기가 소원하는 대로 되기를 갈망합니다.
그것이 불행의 씨앗인 것입니다.
저도 내가 소원하는대로 되기를 갈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갑자기 한 생각을 주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 무엇을 알기에 무엇이 되고 안되고를 갈망하는가?” 그리고 ‘제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포기했습니다,
참 지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