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월레 소잉카.
월레 소잉카, 샤르자국제도서전서 초등학 대상 특별강연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월레 소잉카(89)가 처음부터 글을 잘 썼던 건 아니다. 누나를 따라다니며 놀아달라고 졸랐지만, 어린 남자 동생을 무시하는 건 누나들의 타고난 생존 본능. 누나에게 버림받은 소잉카는 교사였던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심심해서 책을 읽었고, 읽다가 이야기를 조금씩 변형시켜서 직접 써봤어요. 내러티브를 변화시키는 것, 그게 정말 재밌었고 즐거웠습니다.”
1986년 아프리카 출신으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이지리아 작가 소잉카는 2일(현지시간) 샤르자국제도서전 엑스포센터에서 학생들을 만나 이렇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날 행사장에는 초등학생 200여명이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였다. 강의 제목은 ‘학생들 소잉카를 만나다'(Students Meet Wole Soyinka).
소잉카는 이날 독서 교육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어른들에게 추천받아도 좋고, 자기가 선택해서 읽어도 좋다”며 “매체와 관계없이, 아무것이나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글을 잘 쓰기 위해선 “기다리지 말고, 무조건 쓰기 시작하라”며 “거절당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써 내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학식이 쌓일 때까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학교에 저널들이 많잖아요. 열심히 쓰세요. 다만, 이런 부분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장을 쓸 때 어떤 단어, 어떤 표현이 적확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여러분이 만들어가는 문장, 스타일, 이야기에 맞는 단어와 표현을 고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주눅 들지 말고, 계속 읽고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작가가 되어 있을 겁니다.”
두세 살부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요즘 학생들처럼, 중동지역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SNS)에 익숙하다. 소잉카는 SNS의 부작용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잘 활용하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진중한 작가들은 소셜미디어를 경계합니다. 맞습니다. 소셜미디어는 편견을 증폭시키고, 선입견을 조장하기도 하죠. 그러나 나름의 장점도 있습니다. 가령, 글쓰기와 관련해선 쉽고, 싸구려 언어를 쓰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창조성과 내러티브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구순에 가까운 나이 탓인지 질문을 잘 듣지 못할 때도 있었다. 강연에 배석한 아들이 옆에 앉아 상황을 설명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힘 있고, 또렷했다. 그리고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소잉카는 배우 모건 프리먼, 코피 아난 유엔 전 사무총장 등과 겉모습이 비슷해 오인당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모건 프리먼인 줄 알고 사인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며 “그때마다 ‘또 시작이군'(Not again)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처음에는 모건 프리먼이 아닙니다’라고 단호히 말했지만, 그런 일이 하도 반복되다 보니 지금은 사인해달라고 찾아오면 모른 척 내 사인을 해서 준다. 프리먼은 내 아이덴터티를 빼앗아 갔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닮은 이로 프리먼,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복싱 프로모터 돈 킹을 꼽았다.
노벨상을 받은 지 37년. 이제 구순을 약 두 달밖에 남겨두지 않았지만, 그는 타국으로 강연을 다니고, 글을 쓴다. 왕성한 활동의 비결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4~5학년 정도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창의성은 일종의 ‘습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꾸준함입니다. 그리고 호기심을 느껴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배경에 호기심이 갑니다. 무언가를 질문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이 즐겁기도 했고요. 글쓰기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입니다.”
왼쪽부터 소잉카-프리먼-아난 [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