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구팀 “작동 원리 규명…안전한 마취제 개발·환자 마취 제어 기여”
마취제는 어떤 원리로 의식을 잃게 할까? 전신마취에 널리 사용되는 프로포폴이 뇌의 안정성과 흥분성을 조절, 균형을 이루게 하는 ‘동적 안정성’을 깨뜨려 무의식을 유도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얼 K. 밀러 교수팀은 16일 과학 저널 뉴런(Neuron)에서 신경세포(뉴런) 활동을 분석하는 새로운 기술로 프로포폴을 투여할 때 뇌 반응을 분석한 결과 뇌의 안정성과 흥분성 간 정상적 균형이 깨지면서 의식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프로포폴은 뇌의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GABA) 수용체에 결합해 이 수용체가 있는 뉴런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다른 마취제는 다양한 수용체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들 약물이 무의식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프로포폴과 다른 마취제가 동적 안정성(dynamic stability) 메커니즘을 방해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동적 안정성은 뉴런이 새 정보에 반응해 흥분 상태가 되면 빠르게 통제력을 발휘해 뉴런이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을 막아준다.
마취제가 흥분성과 안정성의 균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전 연구는 상반된 결과를 보인다. 일부는 뇌가 너무 안정돼 반응하지 않는 무의식 상태가 된다는 것을 시사하지만 다른 연구는 뇌가 너무 흥분해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면서 의식을 잃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이런 상반된 결과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동적 안정성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고, 복잡한 시스템에서 뉴런 집단의 동적 안정성 변화를 측정하는 ‘안정성 추정을 위한 지연 선형 분석'(DeLASE)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원숭이 뇌 피질에서 시각·청각·공간인식·실행기능에 관여하는 4개 영역에 적용, 정상적 각성 상태에서 프로포폴 투여 후 무의식 상태가 될 때 나타나는 전기신호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소리에 대한 뇌 반응을 정량화했다.
그 결과 정상적인 각성 상태에서는 소리 입력 후 뉴런이 흥분 상태가 돼 신경 활동이 급증했지만 바로 기저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프로포폴 투여 후에는 흥분 상태에서 기저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 더 오래 걸리고 지나진 흥분 상태가 유지됐으며, 이런 효과는 의식을 잃을 때까지 점점 더 뚜렷해졌다.
연구팀은 이는 프로포폴의 뉴런 활동 억제로 불안정성이 증가해 뇌가 의식을 잃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또 연구팀이 간단한 신경망 모델을 만들어 이런 효과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 신경망의 특정 지점 활성을 억제하면 프로포폴을 투여한 동물 뇌에서처럼 신경망 활동이 불안정해졌다.
공동 제1 저자인 애덤 아이젠 연구원(박사과정)은 “이는 억제 증가가 불안정성을 유발하고 결국 의식 상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프로포폴로 인해 억제가 강화되면 다른 억제 뉴런이 억제되면서 뇌 활동이 증가하는 탈억제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밀러 교수는 “여러 마취제의 공통적 작동 메커니즘을 찾으면 마취제마다 안전 규약을 만들 필요 없이 몇 가지만 조정해 마취제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이 연구가 환자의 마취 수준을 모니터링하고 더 정확히 제어하는 방법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출처 : Neuron, Earl K. Miller et al., ‘Propofol anesthesia destabilizes neural dynamics across cortex’, https://www.cell.com/neuron/fulltext/S0896-6273(24)00446-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