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2등 시민 전락”… 민사소송 도입·증거 기준 완화
트럼프 행정부가 귀화 시민권자에 대한 국적 박탈 절차를 공식화하면서 미국 내 이민자 사회는 물론, 법조계와 시민사회 전반에서 깊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25년 6월 11일 발표된 법무부 메모에 따르면, 시민권을 “불법적으로 취득했거나 중대한 사실을 은폐 또는 허위 진술한 경우” 해당 시민의 국적을 민사소송을 통해 박탈할 수 있도록 지침이 내려졌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형사소송 대신 민사소송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피소된 귀화 시민은 변호사 선임권이 제한되고, 정부의 입증 기준도 낮아진다.
법무부는 “법적으로 허용되고 증거로 뒷받침되는 귀화 취소 소송을 우선적·전면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지침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1907년부터 1967년 사이, ‘붉은 공포(Red Scare)’ 시기 약 22,000건의 귀화 취소 사례가 있었지만, 1990년부터 2017년까지는 연평균 11건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관련 소송 건수가 증가세를 보이는 가운데, 이번 행정 지침은 그 범위와 속도를 급격히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새 지침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 출신 재향군인 엘리엇 듀크(Elliott Duke)는 귀화 과정에서 아동 성범죄물 유포 전과를 고지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6월 13일 연방법원에서 시민권 박탈 판결을 받았다.
법무부는 이 사례를 “중대한 범죄 은폐에 따른 정당한 시민권 박탈”로 보고 있으며, 향후 유사 사례를 광범위하게 발굴·추진할 계획이다.
민권 단체와 이민 옹호자들은 이번 조치가 자연출생 시민과 귀화 시민 사이에 이중 잣대를 적용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한 법적 평등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민법률자원센터의 정책 담당자 사미라 하피즈(Samira Hafiz)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런 방식은 결국 미국 시민권을 두 단계로 나누려는 시도입니다.
자연출생 시민은 안정적인 권리를 보장받지만, 귀화 시민은 언제든 박탈당할 수 있는 조건부 권리를 가진 셈입니다.”
이번 지침은 법무부 내부에서도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인권 보호와 차별 시정 임무를 담당하던 시민권 보호국(Civil Rights Division)의 방향성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DEI(다양성·형평성·포용) 프로그램 종료, 트랜스젠더 치료 제한 등 우선 과제로 전환되면서 기능이 약화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NPR 보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해당 부서 변호사의 약 70%에 해당하는 250여 명이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행정 절차 변경을 넘어, 시민권 자체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한 이민 전문 변호사는 “이러한 지침은 미국의 기본 가치인 시민 평등을 근본부터 흔드는 정책”이라며,
“앞으로 법적 도전과 광범위한 헌법 소송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