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묵상하면서 다윗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은혜를 받습니다.
얼마전 시 51편으로 깊은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저의 악함과 죄성이 예전 보다 더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죄인의 괴수라고 한 심정을 알 듯 싶습니다.
그런 죄인인 제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전에도 말씀전하는 일이 두려워 목사 직을 사임하려 했던 적도 있었는데, 여전히 그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성품이나 신실함,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제가 신실하기에 하나님께서 더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며, 제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회자 기도 모임에서 15년 째 여전히 미자립 상태인 교회를 목회하시는 목사님께서 귀한 나눔을 하셨습니다.
하루는 새벽기도회 시간, ‘주여, 저는 실패했습니다’ 하고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아니다. 내가 실패한 것이다’ 하셨답니다.
깜짝 놀라 ‘아니 제가 실패한 것을 왜 주님께서 실패하셨다 하십니까?’ 하였더니 ‘그러면 네 목회가 성공하였다면 네가 잘해서 성공한 것이냐?’ 물으셔서 할 말이 없었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너는 왜 사람들을 네게로 모으려고 하느냐, 나에게로 인도하여야 한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너 자신이 내 안에 온전히 거하는 것이다’ 하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나눔이 모인 목회자들에게 깊은 울림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러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너무나 귀하고 큽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역사이지 제가 그럴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이적도 행하고 귀신도 쫓아내었던 이들 중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나를 떠나가라” 하시는 무서운 말씀을 듣게 될 이들이 많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하여 주님의 역사가 크게 일어났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역사하시는 것이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의하여 좌지우지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은밀한 죄를 작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죄가 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고 안심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을 받아 다른 사람은 구원할 수 있었을지라도 자신은 버림받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두렵고 끔찍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은혜의 도구로 쓰임받을 뿐 아니라 저 자신이 주님과 동행하기를 갈망합니다.
제 안에 있는 죄성은 어찌할 수 없을지라도 은밀한 죄의 종노릇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예수동행일기를 통하여 제 마음을 열고 살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