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한 분이 메일로 상담을 해 오셨습니다.
매우 악하고 고의적인 행동으로 담임목사에게 대적하고 의도적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부목사를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세히 메일을 읽어 보니 ‘목사님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되어 안타까왔습니다.
정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지키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니 불가능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한단 말입니까?
제가 “원수를 사랑하라”후였던 설교를 듣고 분노에 차서 메일을 보낸 젊은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제 설교가 ‘피해자에게 폭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원수에게서 큰 피해를 당했는데, 그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죄책감마저 가져야 한다는 것에 분노했습니다.
저는 충분히 그 젊은 변호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겪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원수는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과 별 관계없는 사람은 원수 될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가족이고, 형제입니다.
가장 믿었던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신뢰하였고 사랑하였는데, 원수로 둔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혼란스렵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하심이라
우리의 원수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어둠의 영입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 사실이 깨달아질 때, 바로서 주님의 말씀에 아멘이 됩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갈 2:20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 앞에서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붙여준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으리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옥에 가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한 장본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에 대하여 돌을 던질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에수님께서도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려고 채찍을 휘두르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를 위하여도 중보하셨고, 그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랑이 있으니 채찍을 휘두르실 수도 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원수를 보면 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주님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