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보편적 가족 서사·생동감 넘친 명품 연기·문학적인 대사
‘인생 드라마’ 호평 더해 화제성 1위도…동남아·남미서도 인기
제주도를 배경으로 평범하면서도 감동적인 한 가족의 서사를 담아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폭싹 속았수다’가 막을 내렸다.
최종화는 평생 시인의 꿈을 품고 산 ‘문학소녀’ 오애순(아이유·문소리 분)이 노인이 되고서 시집을 내고, 인생이 사계절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 때로는 봄, 때로는 겨울이었다고 깨닫는 모습으로 16부작에 걸친 서사를 마무리했다.
‘폭싹 속았수다’는 우리 엄마,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에 생동감 있는 인물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 가슴을 울리는 문학적인 대사가 버무려지며 ‘인생 드라마’라는 호평과 글로벌 인기를 동시에 얻었다.
◇ 우리 엄마·아빠, 그리고 내 이야기…보편적인 가족 서사
‘폭싹 속았수다’가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평범한 가족을 중심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극의 중심에는 1951년생 오애순이 있다.
애순이는 가난한 가정 형편에도 꿈을 잃지 않는 소녀다. 새침한 문학소녀를 자처하다가도 첫사랑 양관식(박보검·박해준)과 야반도주하고, 시댁살이와 생활고에 눈물지으면서도 세 아이 엄마가 되면서 자식에 헌신하며 울고 웃는다.
대단한 성공도, 짜릿한 복수도 없는 평범한 삶이지만 그렇기에 ‘내 이야기’처럼 감정을 이입했다는 시청평이 쏟아졌다.
애순이와 관식이는 그저 성실한 것 하나로 버텨온 조부모·부모 세대를 떠올리게 하고, 딸 금명(아이유)과 아들 은명(강유석)을 통해서는 마냥 어린아이였다가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 자신을 비춰보게 한다.
특히 광례(염혜란)와 딸 애순, 손녀 금명으로 이어지는 3대의 애틋한 모녀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공감의 크기를 키웠다.
10살 딸을 둔 40대 오 모씨는 극 중 잠녀(해녀) 광례가 전복을 구워 어린 애순의 입에 넣어주던 장면을 언급하며 “‘네 입에 들어가면 꼭 천환 같아’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내가 실제로 딸에게 했던 말과 비슷해서 놀랐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다정한 양관식과 권위적인 부상길(최대훈) 중 어디에 가깝냐는 투표가 등장한 것도 ‘폭싹 속았수다’를 우리 삶에 대입해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곳곳에서 ‘깨알같이’ 엿보이는 시대상도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짚을 엮어 얼음을 팔던 시장통 풍경, 아이들이 초를 먹여 반질반질하게 만든 국민학교(초등학교) 바닥, 상영작 간판을 그려서 내걸던 옛날 영화관 등이 대표적이다.
굵직한 정치·사회 사건들이 신문과 TV 방송, 벽보 등을 통해 스쳐 지나가고, 88 서울올림픽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2002년 월드컵 등은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소재로 등장했다.
◇ “모두가 주인공”…생동감 있는 캐릭터의 명품 연기
애순뿐 아니라 일가족, 마을 이웃들이 통째로 주인공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 점도 재미를 더했다.
애순의 든든한 지원군인 잠녀 이모 삼인방, ‘아내 바라기’ 아들 관식이 못마땅해 투덜대는 시어머니, 가부장적인 시할머니, 사글셋방 주인이자 도동 만물센터를 운영하던 하르방·할망, 난봉꾼 ‘학씨 아저씨’ 부상길, 애순의 한량 새아버지 등이 각자 존재감을 뽐냈다.
나문희, 김용림, 염혜란 등 연기 베테랑인 배우들뿐 아니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연기자들의 활약도 빛났다.
애순의 시어머니로 등장한 오민애와 부산 여관 안주인을 연기한 강말금의 기 싸움, 금명이가 불법과외로 가르치던 학생의 엄마로 등장한 김금순과 가정부 역할 남권아의 흉금을 터놓는 대화, 금명의 남자친구 영범 엄마로 분한 고(故) 강명주의 고상하면서도 아집에 찬 연기가 화제였다.
임상춘 작가의 전작에 나온 배우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염혜란과 오정세는 ‘동백꽃 필 무렵’에 이어 이번에도 부부로 등장해 생활력 강한 아내와 한량 남편의 조합을 보여줬다.
하숙집 주인 역할을 맡은 전배수는 ‘백희가 돌아왔다’, ‘쌈, 마이웨이’, ‘동백꽃 필 무렵’에 이어 네 번째로 임 작가 드라마에 등장했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필구 역할을 맡은 김강훈은 이번에는 애순의 첫 손자 양제일로 특별출연했다.
워낙 많은 인물이 등장하다 보니 외려 주연인 박보검의 분량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박보검은 최근 인터뷰에서 “관식과 애순뿐만 아니라 ‘폭싹 속았수다’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가 주인공”이라며 작품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 아름다운 제주 풍광에 흐른 문학적 대사
드라마는 한 사람 인생을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빗대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도 아낌없이 담아냈다.
노란 유채꽃밭, 낮은 현무암 돌담과 정낭(나무를 가로로 걸쳐놓은 대문을 뜻하는 제주 방언), 애순의 엄마가 물질을 하던 에메랄드빛 바다 등이 이야기의 배경이 됐다.
이곳에 심어놓은 임 작가 특유의 문학적인 대사가 빛을 발했다.
에피소드마다 ‘호로록 봄’, ‘꽈랑꽈랑 여름’, ‘자락자락 가을’, ‘팰롱팰롱 겨울’ 등 제주 방언의 운율이 느껴지는 소제목을 달았고, 시인을 꿈꾼 애순이 써 내려간 여러 편의 시를 통해 마치 한 편의 시집을 펼친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애순이 쓴 시에서는 엄마에 대한 짙은 그리움, 관식을 향한 설레는 풋사랑의 맛이 느껴졌다.
‘천만번 파도 / 천만번 바람에도 / 남아있는 돌 하나. / 내 가심 바당에 / 삭지 않는 돌 하나. / 엄마'(시 ‘제주’에서)
‘입 안에 몰래 둔 알사탕처럼/ 천지에 단물이 들어가는 것'(시 ‘ㅊㅅㄹ’에서)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꿈과 사랑은 금명의 내레이션을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됐다.
“나는 그들의 꿈을 먹고 날아올랐다. 엄마의 꿈을 씨앗처럼 품고. 엄마의 꿈은 나에게로 와 아주 무겁고, 아주 뜨겁게 기어이 날갯소리를 냈다.”
극중 어렵고 고된 순간마다 등장한 “살민 살아진다”(살면 살아진다), “살아보니 또 괜찮아요. 살만해요”라는 대사는 따뜻한 위로였고, 편집장 클로이 리(염혜란)가 애순의 시에 감동하며 말한 “너무 장하다”라는 대사는 묵묵히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격려였다.
마무리까지 울림으로 채운 드라마는 인기와 화제성을 놓치지 않았다.
‘폭싹 속았수다’와 주인공 아이유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3월 3주차 TV-OTT 화제성 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공식 집계에 따르면 ‘폭싹 속았수다’는 3월 17∼23일 비영어 TV쇼 가운데 가장 많이 시청된 콘텐츠로 꼽혔다.
지극히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 TV쇼 가운데 글로벌 7위(31일 기준)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