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고통스런 일과 너무나 기쁜 일이 함께 일어납니다.
고통스런 일이든 기쁜 일이든 저에게 필요한 것은 속사람이 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옛 사람은 죽고 우리 안에 새로운 “속 사람”이 형성됩니다.
이 속사람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해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롬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속사람은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합니다.
그냥 내버두면 속사람은 약해집니다
속사람이 약해졌기에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약해졌기에 조그만 문제에 실족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엄청나고도 악한 영적 영향을 우리에게 무차별적으로 부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묵상과 기도없이 살면 속사람은 약해질 수 밖에 있습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속사람은 무너진 상태라고 보아야 합니다.
한 성도가 안타까운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은혜를 받고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웠고,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선교하고, 순교도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요즘 미워서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한 사람 때문에 가정도 교회도 다 떠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정도 밖에 안되었나?
내 믿음이 이 정도였었나?’ 스스로 충격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모두가 겪는 일입니다.
속사람을 방치하고 살면 그렇게 됩니다.
삶의 행복은 건강이나 소유, 성공이 아니라 속 사람이 어떠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 40:31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속 사람의 강건함을 구한 것입니다.
엡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사도 바울은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졌기에’ ‘우겨쌈을 당하였고 답답한 일을 당하였고 박해를 받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였지만’ 무너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누구나 갑자기 죄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먼저 속사람이 무너진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생활이 무너지고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을 마음에 품고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이길 수 있을까?’ 논쟁할 일이 아닙니다.
속사람의 문제입니다.
우리 속사람이 주님과의 관계가 친밀하면 죄가 그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보고 듣는 것이 세상이면 쉽게 죄에 무너지고 맙니다.
설교 전에 잠간 뉴스를 본 것 때문에 설교할 때, 영감이 사라짐을 느꼈을 때가 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은혜가 충만했음에 기뻐하다가도 말 한마디 들은 것으로 인하여 마음이 뒤집어질 때도 있습니다.
듣고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속사람이 예민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속사람이 강해지려면 꾸준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계속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요일 5:18)
오늘도 보고 듣는 것을 조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