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영화 중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장면을 보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마 감독이 작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단 앞에 세워놓고 묻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지 아느냐?”
“네, 압니다.”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것 같으냐?”
“아버지 목숨보다 저를 더 사랑하는 줄 압니다.”
“그렇다. 그러면 이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든지 다 너를 사랑해서 하는 거라고 믿을 수 있겠느냐?”
“네, 물론입니다.”
“좋다. 그럼 이 번제단 위에 누워라.”
이삭은 순종하여 번제단 위에 누웠습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내리칠 때도 이삭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보는데 ‘저런 게 사랑에 근거한 믿음이구나’ 싶어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믿었고, 그런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하자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죽음의 길로 가는 사명이라도 마다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을 향한 사랑에 근거한 믿음이 있으면 죽음의 길에도 순종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죽음도 두렵지 않는 능력을 주십니다.
만약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고백이 안된다면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기 바랍니다.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오히려 기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죽음도 두렵지 않는 믿음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런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하면 됩니다.
“주님, 어떤 어려움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믿음을 저에게도 주세요!”
2001년, 제 아내가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 땅이 꺼지는 듯한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 시간 부흥회 저녁 집회를 앞두고 있었는데, 도저히 설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무지 설교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곧 답을 주셨는데 지금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너는 이미 죽었다고 고백했으면서 죽는 것이 왜 두려우냐? 오늘 저녁 집회에 나오는 성도들이 너와 같은 처지에서 나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제야 저녁 집회에 올 성도들의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날 저녁집회에서 죽음도 이기는 믿음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놀랍게 그날 집회에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도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제 아내의 간증입니다.
“수술 날을 받아놓고 기도하는데 기도하고 나면 평안해졌다가도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두려움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영적인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수술을 앞두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더는 살려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죽어도 좋겠습니다.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자 살려달라고 할 때는 누릴 수 없던 평안이 밀려왔습니다.
사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역사했는데, 제가 그 두려움을 놓으니까 더는 붙잡을 것이 없어진 것입니다. 비로소 제가 죽음을 통과하게 된 것입니다.
죽을까봐 걱정할 때는 놓을 수 없던 줄이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옮겨지니까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믿음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근거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