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조부 시 이해하려 한국어 배워 ‘CIS 한국어 교사 연수’ 첫 참가
우즈베키스탄 공립학교 한국어 교사 “한국어 문학가 도전할 것”
“독립운동가, 배우, 시인, 교사로 활동했던 외조부의 삶을 닮고 싶어 한국어 교사가 됐죠. 할아버지처럼 후학을 양성하며 문학작품을 쓰는 게 목표입니다.”
재외동포청 산하 기관인 재외동포협력센터가 주최한 ‘2025년도 독립국가연합(CIS) 한국어 교사 초청 연수’에 참가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채 옐레나(45) 씨는 2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글쓰기에 도전하는 건 제 몸속 어딘가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타슈켄트 209번 공립학교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채 씨는 지난 11일부터 3주간 한국외대에서 시행하는 연수에 참가 중이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져온 흑백 사진을 잔뜩 꺼내 보였다. 외할아버지 김인봉(1907∼1976) 씨의 젊은 날 활동사진들이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난 외할아버지는 20대에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이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을 중심으로 생겨난 고려인 예술단에 몸을 담았고 고려극장의 전신인 원동극장의 배우로도 활동했다. 당시 극장에서는 주로 춘향전 등 전통극과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 이야기를 소재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오르곤 했다.
그러다가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로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에 정착한 그는 현지 사범대를 나와서 고려인 집성촌에 자리한 공립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이때부터 한국어로 시를 써 고려신문 등에 발표했던 김 씨는 1950년대 중반에 사할린으로 건너와 교사로 정년퇴직했다.
타슈켄트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후 학원에서 영어와 러시아어 강사로 활동했던 채 씨는 나이를 먹을수록 외할아버지의 파란만장했던 삶이 궁금해졌다.
어려서 외할머니와 친척들로부터 외할아버지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한국어로 남긴 시를 접할 때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던 그는 마흔이 넘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채 씨는 외할아버지의 시 중에 ‘작은 제비야’를 제일 좋아한다며 그 자리에서 읊조렸다.
“…하늘에서 자유롭게 날아 치며…천하를 다 보는 저 작은 제비야…내게도 겨드랑이에 날개가 들렸다면 높이 높이 날아올라 속 시원히 살펴보련만…”
채 씨는 “강제이주 후 소련의 소수민족 모국어 교육 금지 시절에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일하게 이어온 것은 고려인 한글 문학”이라며 “혹독한 시절에 모국어로 시를 쓰려고 했던 할아버지의 절박함과 사명감이 시 속에 녹아있어 우리말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시인 김인봉에 대해서는 광복 80주년 기념 기획전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재 고려인문화관 전시 중인 ‘중앙아시아초원에 피어난 고려인 한글문학 전(展)’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그는 “잊힌 할아버지의 행적을 모국에서 조명해주고 있어서 너무 기쁘다”며 “독립운동 행적도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 말고 관련 자료를 찾는 중인데 확인되면 널리 알리고 싶다”고 희망했다.
대부분의 고려인이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타슈켄트에서 한국어로 말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게 안타까웠기에 이번 연수가 너무 소중하다며 그는 “하루 종일 한국어로 말하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교사들과 교류해 행복하다”고 즐거워했다.
연수 기간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와 문화를 배워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커졌다며 채 씨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너무 감동적이라 후손들에게 전해 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고려신문 기자로도 활동했던 그는 최근 서툴지만 한국어로 수필을 조금씩 써보고 있다며 “언젠가는 할아버지처럼 제대로 된 한국어 문학작품을 선보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