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동방박사들입니다. 마태복음에만 등장하는 이들의 정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말 성경이 ‘박사’라고 번역한 단어 ‘magi’는 ‘왕, 사제, 현자(賢者)’라고 번역해도 무방합니다. 흔히 ‘동박박사 세 사람’이라고 하는데, 성경에 세 명이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냥 세 가지 선물을 가져왔으니 세 명이었을 거로 추측한 겁니다. 이들의 신분을 고려한다면 세 명만 달랑 그 먼 길을 여행하지는 않았을 테고, 수행원, 짐꾼 등 꽤 많은 사람이 동행했을 거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들의 행동은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의 구유에 들고 온 선물은 값진 물건이기는 했지만, 막 태어난 아이를 위한 선물로는 별로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유, 기저귀, 옷가지 뭐 그런 게 적절하지 않았을까요? 누군가 이들이 남자여서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어쨌든지 간에 황금, 유향, 몰약을 아기 예수에게 전하고 자신들이 왔던 동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하나님께서 마구간, 말구유에 태어나게 하신 갓난아기 예수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던 것입니다.
이들 동방박사가 헤롯 왕을 찾아가서 그를 대체할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셨는지를 알려 달라고 묻는 대목보다 당혹스러운 부분도 없을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멀쩡하게 살아있는 왕, 그것도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 아내도 자식도 사정없이 해치웠던 악명 높은 헤롯을 찾아가서, ‘새 왕이 태어난 것 같은데, 어딘 줄 아느냐’고 묻는 게 말이 됩니까? 헤롯이 그들에게 아기가 난 곳을 알게 되면 자신도 급히 가서 경배할 수 있도록 알려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현자’라고요? 그들이 꿈에 헤롯을 피해서 가라는 계시를 받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미 헤롯은 역내 모든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끔찍한 영아 학살의 책임이 이 박사들에게도 있었던 겁니다.
헤롯이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모아 놓고 메시아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를 알아내라고 닦달했을 때,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들은 지체 없이 베들레헴이라고 알려준 대목도 화가 납니다. 성경만 잘 알면 뭐 합니까? 메시아 탄생의 의미도, 헤롯이 어떻게 할지도 알지 못한 그들의 무지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결국 박사들과 율법학자들 모두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똑똑함’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저 한심한 지식인이었을 뿐입니다. 눈치코치도 없고, 역사의식도 없는 박사들을 생각하다가, 혹시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쓸모없는 지식만 가득한 무식한 박사, 무지한 현자(賢者)가 되지 말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