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뉴잉글랜드 한국학교 졸업식[뉴잉글랜드 한국학교 제공]
개교 50주년 미 뉴잉글랜드 한국학교 남일 교장 “전통과 미래 잇는 학교”
제19회 ‘세계한인의 날’서 단체부문 최고상인 대통령 표창 수상
“우리 교육은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넘어 아이들에게 정체성을 심어 주는 일이자 사명입니다. 아이 한 명이 한민족의 미래입니다.”
미국 보스턴을 거점으로 반세기 동안 한인 차세대들의 뿌리 교육을 이끌어 온 뉴잉글랜드 한국학교가 개교 50주년을 맞아 최근 연감 ‘뿌리 깊은 나무, 반세기의 발자취’를 펴냈다.
1999년부터 27년째 교사와 교장직을 맡아온 남일 교장은 지난 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연감은 ‘찐’ 한글 전도사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여정이자 감사의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1975년 설립된 뉴잉글랜드 한국학교는 현재 재학생 500여 명, 교사 65명을 포함해 보조교사까지 약 100명의 교사진을 갖춘 미주 한인 사회의 대표적 교육기관으로 성장했다. 남 교장이 부임한 1999년 당시 학생 수는 100여 명 정도였다.
이 같은 성장 배경에 대해 남 교장은 학교의 성장 과정을 한 아이의 성장에 비유해 설명했다. 설립 초기 ‘포대기’ 시절을 지나 1990년대까지 걷고 뛰는 발전기를 거쳤고, 2000년 오크힐(Oak Hill) 중학교로 교사를 이전하며 체계적인 교육 환경을 갖추기 시작했다.
“학교는 하나의 스쿨버스와 같습니다. 운전기사인 교장과 엔진인 교사, 연료인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되어 달렸기에 보스턴 땅에 뿌리 깊은 나무를 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열린 ‘세계한인의 날’에서는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단체부문 최고상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남 교장은 “보스턴은 한인 사회가 그리 크지 않은 도시임에도 50년간 꾸준히 성장해 왔고, 입양 가정과 다문화 가정 자녀들까지 아울러 온 것이 주된 공적”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만 1천명이 넘는다. 졸업 기준도 엄격하다. 중급·고급 과정 각 3년씩 총 6년을 이수해야 하며 졸업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수료 처리 후 다음 해에 재응시해야 한다. 두 살 반부터 시작하는 기초 준비반부터 10학년까지 정규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설명했다.
남 교장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교사진의 전문성과 헌신이다. “가르침은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밝히는 일”이라며 “교사의 마음이 밝아야 아이들의 세상도 밝아진다”고 강조했다.
학교는 매주 ‘교사 레터’를 발행해 교육 철학을 공유하고, 신임 교사와 보조교사를 위한 연구 수업 및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 학급 정원은 최대 15명으로 제한되며, 담임·부담임·보조교사·학부모 교사로 구성된 4인 체계로 수업을 운영한다.
남 교장은 “한 명의 교사가 15명을 모두 관리하는 것보다 네 명의 교사진이 함께할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에 귀한 시간을 내어 아이와 함께 오는 부모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그 시간이 알차게 채워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의 가장 독창적인 사업은 재외동포청 지원을 받아 5년째 운영 중인 ‘차세대 이중언어 교사 양성 프로그램’이다. 남 교장은 “전 세계 한국학교를 통틀어 유일하게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학교는 전체 50개 학급 중 10개를 이중언어반으로 운영한다. 집에서 한글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반으로, 교사는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해 수업을 진행한다.
남 교장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2세들은 사실상 모두 이중언어권”이라며 “한국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그에 맞는 교사 자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11·12학년 학생 중 한국어와 영어 모두 능숙하고, 한국 역사·문화에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춘 학생을 선발해 교사로 양성하는 방식이다.
또한 매사추세츠 주립대(UMass) 교육대학원과 협력해 이중언어 커리큘럼 개발 및 교사 자격증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학교만을 위한 투자가 아닙니다. 이 학생들이 세계 어느 지역으로 가든 그 지역의 2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을 위한 ‘세종과정’에서는 김밥 만들기, 한복 입기 등 문화 체험 수업을 운영한다. 현재는 AI 활용 교육까지 준비하며 급변하는 교육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남 교장은 “말하기부터 시작해 듣기, 읽기, 쓰기 순서로 가르치는 언어 교육 방식을 정립하고, 각 지역과 학생 수준에 맞는 표준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이 장기 목표”라고 밝혔다.
특히, 남 교장은 교육 콘텐츠 확장 사례로서 종이접기를 꼽았다. 그는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 부회장을 지내던 2010년대까지 종이문화재단(이사장 노영혜)으로부터 활발한 지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재단은 강사 파견은 물론 각종 종이접기 재료와 대형 작품을 제공하는 등 NAKS 행사를 적극 후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종이문화재단 박물관에 가보면 한지로 만든 종이접기 작품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다”면서 현재 학교 교사 중 종이접기 강사 자격증 보유자가 4명이며, 장차 종이문화재단과 MOU를 체결해 K-종이접기를 학교 프로그램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남 교장의 두 자녀는 모두 뉴잉글랜드 한국학교를 졸업했고, 보조교사로도 봉사했다. 딸은 현재 미국 외교관으로 파키스탄에서 근무하다 오는 5월 워싱턴으로 귀임할 예정이며, 사위도 외교관이다.
아들은 시카고대를 졸업하고 위스콘신주 매디슨에 소재한 미국 의료 IT 기업 에픽시스템즈에 근무 중이다. 남 교장보다 1년 먼저 한국학교 교사를 시작한 아내도 학교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든든한 후원자로 온 가족이 한국학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