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일본 형제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후지산 자락 리프레쉬 센터에 있습니다.
이번에 일본 위지엠이 결성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예수동행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12년 전,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기 위하여 매일 일기를 쓰고 함께 나누며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자’는 예수동행운동을 시작하였을 때, 마음 아픈 조언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런 일은 혼자서 하시오!’ 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정말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려 한다면 그렇게 떠 벌리지 말고, 조용히 혼자 주님을 바라보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런 조언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기에 제 마음에 큰 고민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려는 노력’은 기독교 역사에서 계속 이어져 왔는데, 주로 수도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막의 수사들의 영성이었고 골방의 영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가르치고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일을 도전하게 하시는 성령의 강권함도 너무나 분명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제가 예수동행운동을 하게 하심이 분명하다는 확인을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 플러스]라는 책 서문에서 [세 왕 이야기]의 저자 진 에드워드가 쓴 글을 읽은 것입니다.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일 같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포기하며 삽니다.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일일 거라고 여기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계속 의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지난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그런 모습이 거의 발견되지 않은 걸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끊임없이 의식하는 일이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에서 경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끊임없이 교제하는 삶을 실천한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런 체험을 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니 추구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 바로 공동체적 노력입니다!
다 함께 오직 그리스도 만을 알고자 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하게 동행하는 놀라운 일은 개인이 혼자 추구하거나 혼자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관계는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는 625 전쟁 후 1957년 성공회 신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한국에 왔는데, 신학을 가르치다가 심각한 문제를 느꼈습니다. 진정한 신학은 교실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배워야 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학교 사역을 그만두고 1965년 강원도 태백 오지에 [예수원]이라는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은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며, 기독교 공동체는 가능하며, 우리가 정말 성경의 원리대로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하였습니다.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원] 공동체를 한국 교회를 영적으로 새롭게 하는데 너무나 귀하게 쓰셨습니다.
대천덕 신부는 강원도 황지에 예수원을 세우고 성령님과 성경의 실험실로 삼았다면 우리는 도시 한 복판에서 교회를 성령님과 성경에 대한 믿음의 실험실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대천덕 신부에게 있어서는 당시 아무도 찾아 올 것 같지 않은 강원도의 깊은 산골짜기가 믿음을 실험하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적합했겠지만, 지금은 영적으로 황량해져 버린 도시 한 복판이 오히려 믿음을 실험해 보기에 더욱 적합한 곳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주님과 친밀히 동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주님을 바라보고 동행하는 일도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