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악화와 ‘젠더 난민’ 증가… “존재를 인정받을 공간 필요”
미 전역에서 LGBTQ 커뮤니티를 겨냥한 차별과 폭력이 빠르게 확산되며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정치 광고가 이 같은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LGBTQ 권익단체 글래드(GLAAD)와 폭력감시기구 ALERT 데스크는 6월 ‘성소수자의 달(Pride Month)’을 맞아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2023년 5월부터 2024년 5월까지 1년간 미국 내에서 932건의 반 LGBTQ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는 하루 평균 2.5건에 해당하며, 이 중 84명이 부상을 입고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사건 중 절반 이상인 485건이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며, 이는 전년도에 비해 14% 증가한 수치다. 교육자 및 도서관 사서를 겨냥한 사건도 270건에 달했으며, 이는 전국 공립학교에서 LGBTQ 관련 도서 약 1만 권이 금서 처리된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분위기의 배경으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발효된 4건 이상의 반트랜스 행정명령과, 2024년 대선 기간 중 집행된 2억 1,500만 달러 규모의 반트랜스 정치 광고를 지목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LGBTQ 커뮤니티의 정신건강 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미국 내 LGBTQ 성인의 68%는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직접 경험했으며, Z세대 LGBTQ의 84%는 “향후 1년 내 폭력이나 위협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난 6월 20일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가 주최한 언론 브리핑에서는 커뮤니티 내 깊어지는 위기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성소수자 권익단체 ‘They See Rainbow’의 창립자 아루나 라오는 “현 행정부 들어 트랜스젠더 아동의 성전환 치료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법안이 속속 통과되면서, 치료를 받기 위해 타주로 이주하는 ‘젠더 난민’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민자나 저소득층은 치료를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안전과 존엄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라오는 “우울증과 자살 시도율이 높은 것은 성 정체성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낙인 때문”이라며, “존재를 인정받고 차별 없이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한편, 아시안 아메리칸 및 LGBTQ 인권운동가이자 ‘빈센트 친 인스티튜트’의 설립자인 헬렌 시아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LGBTQ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한다”며, “누군가의 가족이 성소수자임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인식이 바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의 다양성과 존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