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분자구조 MOF 처음 만든 ‘선구자’…기후변화 등 해결 실마리 마련
“노벨위원회의 연락을 받고 자축하기 위해 금주 규칙을 깼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 3명 중 1명으로 선정된 리처드 롭슨(88·영국)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8일 수상자로 선정된 기쁨을 이같이 나타냈다.
롭슨 교수는 공식 발표 30분 전에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 측의 전화를 받고 멜버른 외곽의 자택에서 조용히 축하했다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그는 “아내와 함께 저녁으로 생선 요리를 하고, 그 후 설거지를 했다”면서 최근 건강상 이유로 술을 끊었지만 “아주 싼 와인 한 잔을 마시면서 그 규칙을 깼다”고 말했다.
고령에도 교수직을 계속 맡고 있는 그는 수상 소식이 “물론 매우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다”고 밝혔다.
롭슨 교수는 “이는 내가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때인 인생 말년에 일어난 중요한 일”이라면서 “하지만 그렇게 됐다”고 AP 통신에 말했다.
그는 인류의 환경문제 대응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새 분자구조 ‘금속유기골격체'(Metal-Organic Frameworks·MOF)를 처음 창조한 선구자로 꼽힌다.
롭슨 교수는 1937년 영국 요크셔 태생으로, 옥스퍼드대에서 학사·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캘텍)와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1966년 멜버른대 화학과로 옮겨 이후 계속 호주에서 살고 있다.
멜버른대에 따르면 그가 처음 MOF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이 학교 무기화학과 강사로 일하던 1974년이었다.
1학년 화학 강의에 쓸 교재가 필요했던 롭슨 교수는 나무 공과 막대로 이뤄진 결정 구조 모형을 제작했다.
이 모형을 다루다가 금속 이온을 유기 분자로 연결해 골격 구조를 만든다는 구상을 생각해냈고, 이후 약 10년간 아이디어를 다듬은 뒤에 비로소 이 같은 화합물을 만드는 시도에 들어갔다.
롭슨 교수는 결국 1989년께 구리 양이온을 활용, 마치 다이아몬드와 비슷하면서도 그 속에 빈 공간이 매우 많은 MOF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화합물은 구조가 불안정해 쉽게 붕괴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 제시한 MOF의 가능성은 이번에 함께 수상자로 선정된 기타가와 스스무(74) 일본 교토대 교수, 오마르 M. 야기(60) 미국 UC버클리대 교수 등 후배 교수들의 빼어난 연구로 가는 길을 열었다.
MOF는 내부에 수많은 미세한 구멍이 있어 이 구멍을 통해 다른 분자들이 드나들거나 흡착될 수 있다. 따라서 다공성 덕분에 엄청나게 넓은 내부 표면적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물리적 특성 덕에 MOF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이산화탄소 포집, 사막의 물 부족 해결을 위한 공기 중 수분 채취, 수소 연료의 고밀도 저장 등 인류의 주요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마크 캐시디 멜버른대 연구부총장은 학교 홈페이지에 “롭슨 교수는 매일 실험실에 들어가고, 학생들과 이야기하며, 수십 년 동안 화학에 대해 큰 생각을 하고 실험을 하는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이 영예를 얻은 겸손한 사람”이라면서 “오늘은 롭슨 교수와 호주 과학에 멋진 날”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거의 60년 동안 우리 화학과의 소중한 일원이었다”면서 그가 “지혜, 그리고 현재 MOF로 알려진 것의 최초 사례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멋진 이야기를 갖고 수많은 학자·학생들과 협력하고 영감을 줬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