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손정훈 담임목사
신학교 시절 아는 선배 한 분의 소개를 받아 매우 특별한 일일 아웃리치를 나간 적이 있었다. 바로 난지도였다. 지금이야 난지도는 캠핑장소로 일년전에 예약해야 캠핑장소로 쓸 수 있을 만큼 인기있는 유원지가 되었지만 언제나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난지도는 원래 유명한 신혼여행지로 이름을 날릴 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섬이었다고 한다. 섬의 이름도 난초(蘭草)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난지도라고 불리웠다. 그러던 것이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면서 섬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난지도에 유입되는 산업폐기물, 건설 폐자재, 생활 쓰레기 등도 급속하게 증가하였고, 15년간 총 9200만 톤의 쓰레기가 버려져 90미터 높이의 언덕 두개가 생겨나게 되었다. 서울에 살 때는 한 여름에88올림픽고속도로를 타고 여의도를 지나 한강 남쪽 강변을 따라 이동 하다 보면 열린 창문으로 강을 건너 오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곤 하였다.
그런데 그 날 처음 올라가본 그 쓰레기 산, 난지도 위에는 놀랍게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폐자재들로 얼기설기 모아 만든 무허가 건물에 거주하면서 쓰레기 중에서 쓸만한 자재들을 모아다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워낙에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사방이 쓰레기로 들어차 있어서 사람 몇 쯤 실종되어도 그만 인지라 경찰 조차 잘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난지도 사람들의 자녀들은 극빈층 자녀들이라 하여 인근 학교에서도 천덕꾸러기 같은 대접을 받곤 하였다.
우리를 소개해준 선배님은 그 곳 주민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있었다. 생활이 어렵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배를 마친 뒤에는 애찬이 이어졌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에 연신 코만 잡고 있는 우리들 앞에서 선배는 천연덕스럽게 음식을 펼쳐 먹으며 주민들과 농을 주고 받기도 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까지도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그날 입고 갔던
옷과 신발에까지 박혀 있는 썩은 악취였다.
세월이 흘러 중국의 대도시 상하이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서구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대화되고 세련된 그네들의 생활환경을 보며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데 바로 곁에서 사람이 쓰러져 죽어가거나 장기매매를 위해 납치를 당해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봐 못본 척 그 자리를 피한다는 살벌한 이야기를 교포들로 부터 들었을 때 화려한 겉모습과 그네들의 영적인 현실은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나 외적인 모양과 그 사람의 성화의 정도는 정비례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제자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가르치 주셨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막 7:15-16)
물론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것이 그의 가치나 영혼의 정결함을 결정적인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오히려 나의 죄된 본성에서 발원하여 말과 행동으로 구체화되어 나오는 것들이 나를 더럽게 한다는 것이다. 난지도에서 자기 땀 흘려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최고급 주택가에 살아도 음란과 탐욕, 교만과 거짓을 내뿜으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바로 주변의 사람과 환경을 더럽히는 주범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죄를 씻어낼 성령과 물과 피가 필요하다. 첫 단계는 자신의 더러움을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그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 주실 수 있는 성령님의 역사와 예수님의 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영이 정결해지면, 쓰레기 더미 같은 나의 환경도 새로 태어난 난지도처럼 천국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