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의 아픔과 진실을 담은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음을 4·3영령들께 기쁜 마음으로 봉헌해 드립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평화재단이 18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가진 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봉헌식에서 양성주 4·3희생자유족회 상임부회장이 유족을 대표해 이같이 고했다.
폭우 속에 진행된 봉헌식에 참석한 4·3 유관 단체들은 2018년부터 7년 동안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 지난 4월 11일 등재 결정을 얻어낸 뒤 이날 인증서를 받아 들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양 부회장은 “이 영광은 4·3영령님 한 분 한 분의 고귀한 희생과 피땀 위에 쌓아 올린 것”이라며 “나아가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모든 이들의 연대와 헌신의 결실”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유네스코는 인류가 보존해야 할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다. 기록물의 중요성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일하고 희귀해 완결성을 갖춘 기록이어야 한다.
제주4·3기록물은 1948년 4·3사건 당시부터 정부의 공식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된 2003년까지 억압된 기억에 대한 기록은 물론 화해와 상생의 내용을 담은 1만4천673건의 역사적 기록이다.
공식 문건 성격인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 제주도의회 피해신고서, 대한민국 정부의 진상보고서 등 관공서의 공식 문건을 비롯해 목숨을 걸고 남긴 민간인 기록들도 다수 들어있다.
‘빨갱이’로 낙인돼 탄압받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자와 유족들이 생생한 증언을 이어갔으며 피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피해조사 관련 문서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가해자였던 사람들을 포용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제주지역사회가 시작한 화해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시민사회의 진상 규명 운동 기록도 담겨 있다.
이 같은 노력은 이날 봉헌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과 유사한 중국 난징 대학살 기념관이나 독일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기록들과 사뭇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인류의 오점’인 대학살에 대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공간이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4·3평화공원의 경우는 화해와 상생까지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에 노력해온 양정심 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희생자와 유족이 국가 폭력에 맞서 증언하고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사회가 자발적 진상 규명 운동을 벌여왔다”며 “화해와 상생을 통해 국가의 공식 조사를 이끌어 낸 점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전했다,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 서남쪽에 있는 난징 대학살 기념관은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전쟁범죄로 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양민 학살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세워졌다.
일본 군국주의 침략 광기가 가득했던 1937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불과 40일 사이에 약 30만명의 희생자를 낸 참혹한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 학살 추정지에서 발견된 유골을 모아놓은 기념실을 비롯해 당시 자료와 사용된 무기, 일본군의 일기 등 다양한 기록들이 포함돼 있다.
국가 주도로 건립된 난징 대학살 기념관은 외국 군대에 의한 참혹한 피해를 뚜렷하게 기억하면서 필요한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공간이다. 다만, 정시 선전에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독일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과 연합의회 건물에 인접한 중심지에는 홀로코스트 기념관(Holocaust memorial)이 자리 잡고 있다. 2천711개의 크고 작은 석관이나 비석 형상을 한 직육면체 구조물들이 놓여있어 방문객을 압도한다.
이곳은 나치가 저지른 600만 유대인 학살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과거 범죄에 대해 독일인들이 세대를 넘어서 반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전쟁 범죄에 대해 진정 어린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과 종종 대비된다.
올해로 77주년을 맞은 제주4·3사건, 그리고 그 기록은 ‘금기의 역사’에서 ‘인류가 기억해야 할 역사’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됐다.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는 봉헌식에서 “이제 제주 4.3은 세계의 기억이 되었고 이 땅의 상처와 극복 과정은 인류 전체의 성찰이 됐다”며 “평화의 씨앗이 되고 인류의 지혜로 승화되도록 하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