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이민제도 전면 재편 착수… 출생시민권까지 흔들
미국의 합법 이민자 기준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민권, 영주권, 임시보호신분(TPS), DACA(드림액트) 등 기존 이민제도 전반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착수하면서, 최대 200만 명이 넘는 합법 체류 이민자들이 거주 자격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연방 대법원이 출생시민권 제한과 관련된 소송을 심리하기로 결정하면서, 최종 판결 결과에 따라 이민자 커뮤니티 전반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 5일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가 주최한 언론 브리핑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민법 전문가들은 “체류 기간을 갱신하며 합법적으로 살아온 이민자들조차 더 이상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행정부가 특정 국적을 우대하던 1900년대 초 이민 체제로 회귀하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UCLA 이민법·정책센터의 히로시 모토무라 공동소장은 “DACA나 TPS는 유효 기간 동안 합법 체류가 보장되는 제도이며, 갱신을 통해 장기 체류로 이어져 왔다”며 “이러한 합법 신분 체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난민·망명 경로로 취득한 영주권 사례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했으며, 수년 전 시민권을 받은 이민자들의 기록을 다시 열어 시민권 박탈 절차를 확대하고 있다. 일부 국적자의 경우 시민권 수여식이 돌연 취소되는 사례도 보고됐다.
가장 큰 논란은 출생시민권 폐지를 목표로 한 행정명령(14160호)이다. 해당 명령이 시행될 경우,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일지라도 부모 중 최소 한 명이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일 때만 시민권을 부여받게 된다.
모토무라 소장은 “대법원이 이 사안을 받아들이면서 출생시민권에 대한 헌법적 해석이 바뀔 가능성이 현실화됐다”며 “누가 이 나라에 속하는지를 행정부가 선별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를 “미국 헌정사상 가장 급진적인 변화”라고 덧붙였다.
인도적 절차를 통해 입국한 이민자들은 특히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규정을 준수해 법원에 출석한 뒤 오히려 체포·구금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구조단체 ‘저스티스액션센터’의 로라 플로레스-페리야 변호사는 “서류 절차를 위해 이민법원에 출석한 이민자들이 갑작스럽게 사건 기각 통보를 받은 뒤, 대기 중이던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해 체포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는 즉결추방(expedited removal) 절차에 회부돼 충분한 소명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인아메리칸코커스의 아델리스 페로 대표는 “현재 미국에는 약 60만 명의 베네수엘라 출신 TPS 소지자가 거주하고 있다”며 “수년간 합법 체류 요건을 충족하고 세금을 내며 살아온 이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커뮤니티 전반에 퍼지고 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는 미국 내 영사 기능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여서, 출국이나 자진 추방을 원하더라도 여권이나 신분증 발급이 어려운 상황이다.
DACA 수혜자인 안드리아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2021년 연방법원 판결 이후 DACA 갱신이 중단되면서 취업과 거주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며 “내 삶의 전부는 미국에 있는데, 가보지도 않은 나라로 추방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미국 이민제도의 근간을 다시 쓰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법원 판사들을 대거 해임하면서 사법 절차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 부족으로 심사가 지연되거나 자동 기각 처리되면서 합법 체류자가 불법 신분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 이민법원 판사 제레마이어 존슨은 “법원 출석 자체를 두려워해 출두하지 못하면서 체류 신분을 잃는 이민자들이 나오고 있다”며 “그 결과 체포와 구금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민판사 해임은 합법적 지위를 심사할 제도를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즉결추방과 장기 구금 역시 자발적 추방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모토무라 소장은 “현 행정부의 정책은 모든 규정을 준수해 온 이민자들에게조차 ‘당신은 이 나라에 속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며 “합법 이민의 정의가 근본적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