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즐거웠습니다. (한국가요에) 미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대중가요 100년 역사를 집대성해 ‘한국가요사’를 펴낸 재일동포 연구자 박찬호(朴燦鎬)씨가 지난 9월25일 일본 나고야에서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아르코예술기록원을 통해 26일 뒤늦게 전해졌다. 향년 81세.
와세다대에 다닐 때부터 민족운동에 헌신한 고인은 재일한국학생동맹, 민족시보사 등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신문에서 한국 노래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오려두고, 한국에 드나들 때마다 음반을 구입하는 식으로 한국가요사를 연구했다.
1987년 일본에서 ‘한국가요사 1895∼1945′(쇼분샤)를 펴냈다.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1978년부터 9년간 수많은 음반, 잡지, 신문 등 자료를 뒤진 결과물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대중가요 역사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전무할 때였다.
1992년 한국에서 첫 번역 겸 증보판 ‘한국가요사'(현암사, 안동림 옮김)가 나왔고, 안씨의 권유로 해방 이후 1980년까지 가요사를 정리한 ‘한국가요사 1∼2′(미지북스)가 2009년 한국에서 출간됐다. 이때는 고인이 직접 한글 원고를 썼다. 2018년에는 일본어판 ‘한국가요사 1∼2’가 출간됐다.
대중가요 연구가 이영미 씨는 2009년판 발문에 “그 성실함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라고 썼다.
고인은 2009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1980년 이후의 가요사 정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줬으면 좋겠어요. 요즘 노래는 영 이해하기가 어려워서…”라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