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케이드·메디케어 사상 최대 삭감, 기후 예산 축소, 유학생 비자 제한 우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독립기념일에 서명한 대규모 예산 법안의 여파가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이번 법안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도입된 감세 정책을 유지하면서, 화석연료 산업과 국경 안보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메디케이드(Medicaid)와 메디케어(Medicare), 식품보조 프로그램(SNAP) 등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기적인 예산 절감을 넘어, 미국의 보건, 환경, 이민,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메디케이드 역사상 최대 삭감… 사실상 오바마케어 폐지”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분야는 의료복지다. 이번 법안은 메디케이드 예산을 무려 9,000억 달러 삭감하며, 이는 해당 제도 도입 이후 최대 규모다. 오바마케어(ACA) 수혜자는 앞으로 근로활동 증명 서류를 제출해야만 보험 혜택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약 480만 명이 보험 자격을 상실할 것으로 추산된다.
자격 갱신 주기도 기존 1년에서 6개월로 단축됐고, 저소득층 합법 이민자에 대한 오바마케어, 메디케이드, 메디케어 자격 지원도 크게 제한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등록 간소화, 요양원 인력 확충 등 정책은 모두 중단되며, 농촌 병원 지원 예산 500억 달러가 대체 수단으로 포함됐으나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65세 이상 시니어를 위한 메디케어 예산도 약 5,000억 달러 삭감된다. 병원과 요양원 지불액 축소, 예방 진료 예산 감축, 의료기기 및 약품 환급 제한 등이 포함돼 있다.
KFF 보건정책 부사장 래리 레빗(Larry Levitt)은 “이러한 조치는 단기적으로는 연방 지출을 줄이겠지만, 예방 진료가 줄어들면서 응급 상황이 늘고, 결국 사회 전체의 의료비용이 더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민자 커뮤니티, 의료 중단 움직임
이 같은 조치와 함께 최근 불법이민 단속이 강화되면서, 일부 이민자 커뮤니티에서는 메디캘(Medi-Cal) 자진 해지 및 병원 진료 중단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의료 서비스를 이용했다가 신분이 노출되어 체포되거나, 향후 영주권 심사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래리 레빗 부사장은 “현행 법안은 의료 서비스 이용만으로 이민 절차에 영향을 주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하며, “임산부와 어린이, 응급환자는 반드시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하며, 불필요한 공포로 인해 기존의 법적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커뮤니티 단체들과 의료기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법적 보호 수단을 안내함으로써 불안을 해소하고 이민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학생 비자·공공혜택 제한… “고급 인재 유치에 역행”
이번 법안은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유학생 비자 신청 수수료 인상과 심사 강화, STEM 전공자의 OPT(실습 프로그램) 연장 자격 축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유학생 가족에 대한 건강보험 보조금이나 주거 지원 등 공공 혜택도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주에서는 유학생 배우자의 취업 허용 조항 폐지를 검토하고 있어, 유학생 커뮤니티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미국 내 고급 인재 유치 전략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위기 대응 예산 축소… 청정에너지 산업 ‘직격탄’
환경 분야 예산도 큰 폭으로 삭감됐다. 태양광, 풍력, 전기차, 열펌프 등에 대한 연방 세액 공제가 전면 폐지됐고, NASA와 해양대기청(NOAA)의 기후 관측 예산 역시 대폭 줄어들었다.
환경운동가 빌 맥키븐(Bill McKibben)은 “이번 법안은 기후위기 대응을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청정에너지가 가장 저렴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임에도 정부가 이를 저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는 9월 21일 ‘선데이(Sun Day)’ 시민 캠페인을 통해 정부 정책에 맞선 저항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국가 재정적자 3조 달러 증가 전망
한편, 지난 11일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예산안이 미국의 보건, 환경, 재정에 장기적 구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향후 10년간 국가 재정적자가 약 3조 달러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관련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래리 레빗 부사장은 “지금은 국민 개개인이 의료 및 이민 관련 법적 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커뮤니티 전체가 정보 공유와 연대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