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박제방 메시지[텔레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여권사진 공개하고 중국어로 “어머니 위험”…체포조 모집 정황도
해외에서 대포통장 명의자 노릇을 하다 도망친 한국인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박제방’이 텔레그램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범죄단체에 자기 명의의 대포통장을 빌려줬다가 돈을 챙기고 잠적한 사람 등을 표적으로 보복성 ‘신상 털이’를 해 위협함으로써 또 다른 ‘배신’이나 ‘변심’을 막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22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텔레그램에서는 이른바 ‘장주'(통장 명의자)를 박제하는 채널들이 수천∼수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채 운영되고 있다.
업체들로부터 관련 제보를 접수한 뒤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 주소, 계좌번호 등을 공개하는 식이다.
구독자 2천600명의 한 대화방은 사회악과 개인 원한을 가리지 않는다며 “박제 후 인생을 괴롭혀주겠다. 정신교육 제대로 시켜주겠다”는 문구를 내걸었다. 중국 국적으로 추정되는 운영자는 가족 신상정보까지 공개하며 명의자들을 압박했다.
한 ‘먹튀'(먹고 튄다) 명의자의 여권 사진을 공개하고는 “저희 쪽 사람한테 사기 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드리겠다”며 중국어로 ‘오늘 밤 네 어머니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범죄수익 3억원을 ‘횡령’하고 태국으로 도주했다는 명의자 역시 여권 정보가 공개되고 ‘적색수배’라는 이름으로 위치를 제보받았다. 운영자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1만8천여명이 구독 중인 또 다른 대화방에서도 하루에 1∼2명씩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있었다.
이 대화방에 박제당한 명의자는 “‘장'(통장)을 팔러 온 인생 ○○인데 제 돈만 보고 피해를 주고 가볍게 행동했다”며 자필로 반성문을 썼다. 운영자는 이 사실을 공개하며 “반성문을 아무리 써도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한 ‘장집'(대포통장 모집책) 대화방은 ‘출동팀’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체포조까지 모집했다.
이 업체는 먹튀 명의자를 잡았다며 무릎 꿇리고 이발기로 머리를 미는 영상을 여과 없이 공개해 참여자들에게 겁을 주기도 했다.
불법 대부업체의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를 박제하자마자 대포통장 명의자 구인 광고를 게시해 궁지에 몰린 이들을 유인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이들 박제방은 동남아시아 범죄단지 피해자들이 탈출을 단념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태국에서 대포통장을 대여한 경험이 있다는 A씨는 “아무리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범죄단지로) 간다고 해도 가족들의 정보까지 모두 털린다는 건 부담될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박제를 넘어 물리적으로 위협을 가할 수도 있는데 무서워서 도망가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