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상·여우주연상 후보 제외에 팬들 분노…유명 인사들도 논쟁 가세
할리우드리포터는 ‘패스트…’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 배제 꼬집어
올해 아카데미상(오스카상) 시상식에서 페미니즘을 담은 영화 ‘바비’가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지 않은 것을 두고 미국에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바비’는 지난 23일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발표한 후보 명단에서 작품상과 각색상, 남우조연상(라이언 고슬링), 여우조연상(아메리카 페레라) 등 8개 부문에 올랐지만, 그레타 거윅 감독과 주연배우 마고 로비는 각각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 호명되지 못했다.
이를 두고 현지 여러 매체가 “이변”, “놀라운 결과”라고 전하면서 “오스카가 ‘바비’를 푸대접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CNN은 “거윅과 로비가 각각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부문에서 충격적인 무시를 당했다”며 “반면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라이언 고슬링은 바비의 ‘켄’ 역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고슬링은 관련 성명을 내고 “바비 없이는 켄도 없고, 그레타 거윅과 마고 로비 없이 영화 바비가 있을 수 없었다”며 “그들이 각 부문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팬들을 비롯해 유명 인사들은 아카데미가 작품상 후보작의 여성 감독과 주연 여배우를 제외한 것은 이 단체의 성차별적인 구조가 반영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작가 샬럿 클라이머는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에서 “아카데미는 가부장적 구조에서 소외된 여성들에 대한 영화인 바비를 작품상 후보에 올렸지만, 이 영화를 연출한 여성은 수상 후보에 올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작가 조디 리퍼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이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해 “우리는 사실 가부장제를 아주 잘하고 있다”며 이번 후보 지명을 비꼬는 내용을 올렸다.
소설가 브래드 멜처도 소셜미디어에 “바비가 아니라 켄을 후보에 올린 것은 영화 속 줄거리와 똑같다”고 꼬집었다.
후보 발표 다음 날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가세해 X 계정에 “그레타와 마고, 흥행에 성공했지만 금메달을 집에 가져가지는 못한다”며 “수백만의 팬들은 당신들을 사랑하고, 두 사람은 ‘케너프'(켄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의 영화 속 신조어)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고 썼다.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양자경(양쯔충·영문명 미셀 여)도 NBC ‘투데이쇼’에 출연해 관련 질문을 받자 “(바비는) 분명히 가장 성공적이고 사랑받은 영화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유감스럽다”고 답했다.
반면 이번 일을 성차별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배우 우피 골드버그는 연예매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인터뷰에서 “나는 이 영화를 알고, 그 위대함과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도 알지만, 모두가 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하는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보 지명에) 무시는 없다”며 “시상은 주관적이고,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들이 시상식 투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매체 할리우드리포터의 수석 편집자 레베카 선은 25일 칼럼에서 “바비가 무시된 것을 단순히 성차별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며 “또 여성 혐오를 주장하는 것은 쥐스틴 트리에 감독(감독상 후보인 여성감독)의 성취도 지워버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스카는 전통적으로 진지함 쪽에 무게를 두고 코미디에 대한 취향은 (올해의 ‘가여운 것들’이나 작년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더 노골적으로 비트는 것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시상식 무시에 대한 집착은 백인 페미니즘의 한 사례”라며 사람들이 이번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첫 원주민 출신 배우 릴리 글래드스톤 등 유색인종 여성을 인정하는 대신, 두 백인 여성에게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에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도 연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대표적인 유색인종 배우로 ‘패스트 라이브즈’의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를 꼽았다.
그는 “(그레타) 리의 미묘한 이중언어(한국어·영어) 연기가 일부 (아카데미) 투표자들에게는 너무 미묘하고 조용하게 느껴진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또 “리는 인생의 거의 절반을 전문 배우로 살아왔지만, ‘패스트 라이브즈’가 첫 주연작이었다”며 “연기자 개인과 그들이 속한 커뮤니티 모두에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그런 무시가 주는 타격은 (수상 후보 제외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변방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도 궁극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이 황홀한 경험이 그저 이례적인 것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것이 큰 두려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레타 리는 앞서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지명되지 못했다.
또 ‘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한 한국계 셀린 송 감독 역시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감독상 후보에는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