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크기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손정훈 담임목사

1950년대에 영국의 컨테이너선 하나가 스코틀랜드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본래 포르투갈산 포도주를 나르는 배였는데, 하역을 모두 마쳤을 때 한 직원이 포도주가 다 빠져나왔는지 확인 차 냉동고에 들어갔다가 다른 직원이 밖에서 문을 잠궈 버리는 바람에 그만 냉동고 안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사나이는 깊이 절망하였고, 냉동고 안에 먹을 것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추위를 느끼며 조금씩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마침내 배가 리스본 항구에 도착하였을 때 냉동고를 열어본 사람들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였다. 한 사나이가 냉동고 안에서 차가운 시신이 되어 얼어 죽어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향해 나가던 그는 냉동고 벽에다 손가락이 얼고, 코가 얼고, 폐부에 얼음이 차들어 가는 지극히 고통스러운 순간을 그대로 묘사해 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로 냉동고 안의 온도가 영상 19도였다는 사실이었다. 짐을 다 부렸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는 냉동고를 가동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절망적인 생각이 그 사나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고, 그는 영상19도의 온도에 얼어 죽은 것이다. 생각의 크기를 넓히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만 갇혀 있다 보면 사람들은 상상 속에서 이미 죽음을 맞게 된다.

나의 어머니가 오래전에 당신의 한 친구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학창시절에 어머니에게 매우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공부를 잘 할 뿐 아니라 외모도 예뻐서 친구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던 여학생이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우연히 길에 앉아 점을 보는 점쟁이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점쟁이 할머니는 지나가는 어머니의 친구를 보고 “음~ 그 녀석 얼굴이 반반한게, 술집 마담이나 되겠구나…” 라고 한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그녀는 기분 나쁜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저 인상만 찌 뿌리고 지나갔지만, 집에 돌아와도 노파의 말은 그녀를 떠나지 않고 뇌리를 맴돌았다. 살아가다 힘들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그녀는 “열심히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난 어차피 술집 작부나 될 운명이니…”라고 뇌까리면서 포기하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녀는 놀랍게도 그 노파의 말대로 술집 여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실언을 들은 사람이 우리 어머니가 아니었던 것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생각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과 민족은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역시  불행한 운명을 벗어 날 수 없다. 식량의 부족과 열악한 위생시설, 적절한 교육의 부재 속에 간신히 생존해 가는 것을 운명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러한 운명론적인 생각의 감옥에 갇혀 종처럼 지내기에 당연히 삶을 개혁하려는 어떤 의지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지난 2018년 라오스에서 SK가 공사 중이던 댐이 붕괴되어 수 많은 이재민을 낸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내가 섬기던 교회가 설립한 NGO가 사회선교 차원에서 지원을 결정하면서 현장 실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처참하게 무너진 삶의 현장과 자연의 힘 앞에 무기력하게 내동댕이쳐진 수재민들의 삶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며칠이 지나고 나니 수재민들이 다시 떠나온 그 집으로 하나 둘 씩 되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정부와 현장 전문가들은 다른 댐들도 붕괴의 위험이 있어서 인근 모든 마을에 소개령을 내린 후 고립된 이재민을 구조하는 중이었는데 그래도 막무가내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현지 지도자들의 설명을 듣고 나니 비로소 그러한 그들의 태도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라오스는 공산국가이지만 국민 대부분이 불교도 들이어서 운명론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고생스러워도 그저 착하게 살다 죽으면 다음 생에 더 나은 신분으로 태어나게 될 터인데 뭘 그리 운명을 바꾸려고 애쓰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 개혁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것이 그네들의 삶을 지탱하는 세계관인 까닭이다.

태어날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무한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이들은 불행하게도 그의 능력에 걸맞는 생각의 크기와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다섯 가지의 탤랜트를 가지고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은 한가지의 탤런트만 가지고 태어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받은 탤런트를 많이 가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열등감과 절망감만 키울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도약대로 삼아 몰입(Immersion)함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생각에 날개를 달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 언제나 환경의 굴레를 뚫고 비상할 수 있다. 세계가 러시아발 핵위협과 40년 만에 맞는 최악의 인플레이션 앞에 두려워 떨고 있다. 그러나 넓은 시야를 가지고,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 언제나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대안을 만들고 이를 시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우리는 생존(survive)을 넘어 반드시 승리(thrive)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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