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하락·고령화·이민 둔화 겹치며 구조적 전환 압박
전문가들 “경제·환경·사회계약 전반 재설계 불가피”
미국이 출산율 하락, 급속한 고령화, 이민 둔화라는 세 가지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장기적인 인구 감소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인구 축소가 단순한 인구 통계 변화에 그치지 않고 노동시장, 경제 성장, 사회보장제도, 가족 구조, 환경 정책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진단은 아메리칸 커뮤니티 미디어(ACoM)가 주최한 전국 브리핑에서 인구·보건·경제·환경 분야 전문가들의 발표를 통해 제시됐다.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 여성·보건 이니셔티브 디렉터 애나 랭어 박사는 “인구 변화는 출산율, 사망률, 이주, 연령 구조라는 네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며 “이 가운데 출산율 하락은 거의 예외 없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랭어 박사에 따르면 1970년대 전 세계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은 약 5명이었으나, 2024년에는 2.2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미국 역시 1960년대 약 3.5명에서 현재 1.6명까지 떨어졌으며, 아시아와 중남미의 다수 국가도 인구 유지를 위한 대체 출산율(2.1명)을 이미 밑돌고 있다.
출산율 감소의 배경으로는 ▲주거·보육 비용 부담 ▲불확실한 경제 전망 ▲기후 위기와 국제 정세에 대한 불안 ▲여성의 교육 수준과 노동시장 참여 확대 ▲가사·돌봄에 대한 성별 역할 불균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랭어 박사는 “여성들이 노동과 돌봄을 동시에 떠안는 구조에서는 출산이 점점 더 어려운 선택이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사례도 언급됐다. 랭어 박사는 “중국은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 두 자녀, 세 자녀 정책으로 전환했지만 출산율 반등은 나타나지 않았다”며 “높은 생활비, 경력 단절에 대한 우려, 늦어지는 결혼 등 구조적 요인이 정책 효과를 제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기준 1.1명 안팎으로, 세계 최저 수준에 속한다.
그는 “현금 지원이나 세제 혜택은 기본적 권리 보장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인구 감소 흐름을 되돌릴 수단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구 구조 변화는 향후 수십 년간 경제 성장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의 아누 마드가브커 파트너는 “앞으로 20~25년 안에 고령화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약 0.5%포인트 낮출 것”이라며 “이는 선진국뿐 아니라 고성장을 이어온 개발도상국에도 상당한 부담”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 서유럽, 일본, 한국 등은 이미 노동 가능 인구가 정점을 지난 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며 “현재 4명의 노동자가 1명의 고령자를 부양하는 구조가 향후 2대 1 수준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인력 부족을 보완하고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 도입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를 단순한 통계상의 변화가 아니라 경제·환경·젠더·이민·복지 전반에 걸친 구조적 전환의 신호로 평가했다. 가족이 담당해 온 돌봄 기능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지, 노동 기간과 은퇴 개념을 어떻게 재조정할지, 경제 성장의 기준을 어떻게 새롭게 설정할지가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마드가브커는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최소 1.5배, 많게는 5배까지 이민자가 필요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현 수준의 미국 인구를 유지하려면 연간 약 50만 명의 신규 이민자가 유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랭어 박사 역시 “이민자 출산율도 시간이 지나면 사회 평균에 수렴한다”며 “이민은 단기적인 완충 장치일 뿐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강제적 장려 정책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조건과 권리를 보장하는 구조적 개편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인구 감소 시대에 본격 진입할 경우, 이는 성장 중심의 기존 패러다임을 넘어 사회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