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구팀 “원충 ‘무빙 정션’ 구조·기능 규명…침입 차단 미니 단백질도 설계”
말라리아 원충이 인간 적혈구 안으로 침입할 때 이용하는 고리 모양 구조인 ‘무빙 정션'(Moving Junction)이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숙주 세포막을 능동적으로 변형시키는 ‘분자 기계’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미국 컬럼비아대 어빙 메디컬센터 치민 호 교수팀은 1일 과학 저널 셀(Cell)에서 말라리아 원충의 적혈구 침입 과정에서 형성되는 무빙 정션의 3차원 구조를 처음으로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충의 세포 침입을 막는 미니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호 교수는 “원충에서 직접 분리한 손상되지 않은 무빙 정션 기본단위를 분석, 수십 년간 풀리지 않은 구조의 기능을 밝혀냈다”며 “실제 생체 환경에서 표적 구조를 확인함으로써 이를 차단하는 분자를 설계하는 것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말라리아는 매년 약 6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감염병으로 희생자 대부분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다. 현재 사용되는 주요 항말라리아 약제에 대한 내성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 새로운 치료 표적 발굴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말라리아 원충은 적혈구 안으로 침입해 증식한 뒤 약 48시간마다 대량으로 방출돼 다시 새로운 적혈구를 감염시키며,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말라리아 특유의 주기적인 고열 증상이 나타난다.
연구팀은 말라리아 원충은 무빙 정션이라 불리는 고리 모양 구조를 이용해 인간 적혈구에 침입하는데, 무빙 정션은 1978년 전자현미경에 처음 관찰됐지만 1분도 채 유지되지 않아 실제 구조와 기능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연구에서 말라리아 원충 내부의 운동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물질을 이용해 적혈구 침입이 진행되는 순간의 원충을 포획한 뒤, 무빙 정션의 기본 단위(AMA1-RON2·4·5) 복합체를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분리했다.
이어 극저온 전자현미경(cryo-EM)으로 분석한 결과, 이 복합체는 AMA1과 RON2, RON4, RON5가 1:1:1:1 비율로 결합한 구조였으며, 전체 모습은 범선을 닮은 형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AMA1은 돛, RON2·4·5는 선체에 해당하는 구조를 이룬다.
연구팀은 가장 중요한 것은 무빙 정션이 원충이 통과하는 수동적 통로가 아니라는 점이라며 적혈구 세포막과 맞닿은 RON2·4·5가 세포막을 휘게 하고 형태를 바꿔 원충이 침입할 수 있게 만드는 분자 기계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어 이번에 규명한 구조를 이용해 AMA1과 RON2의 결합을 방해하는 미니 단백질(A2)을 인공지능 기반 단백질 설계 기법으로 새롭게 제작했다.
이 단백질은 시험관 실험에서 농도가 높아질수록 말라리아 원충의 적혈구 침입을 효과적으로 억제했으며, 이미 감염된 적혈구에는 영향을 주지 않아 일반적인 독성이 아니라 세포 침입 자체를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미니 단백질은 아직 치료제가 아니라 개념증명 단계의 후보물질이지만, 실제 생체 상태를 반영한 단백질 구조를 활용해 침입 억제제를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생체에서 직접 포획한 불안정한 단백질 복합체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억제제를 설계하는 이번 접근법이 말라리아뿐 아니라 연구가 어려운 다른 기생충과 병원체 연구에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출처 : Cell, Chi-Min Ho et al., ‘Structural basis for host membrane binding and remodeling by invading malaria parasites’, 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26)006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