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때가 있음을 명심하자

선한 목자 교회 유기성 담임목사

정말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분을 만나 상담을 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신발 속의 모래처럼 너무나 불편하여 함께 하기 진짜 싫은 사람, 가시같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분에게 결코 미움과 분노로 대하지 말라고 권하였습니다.
교육 목사 시절, 어쩔 수 없이 사임시켜야 했던 교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의 잘잘못에 대하여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그 분에게 끝까지 잘해 주지 못한 것만 생각나 너무 미안한 것입니다.
그것이 제겐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다시 만날 때가 있음을 명심하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화를 품지 말라’ ‘원수도 사랑하라’ 하면 한숨을 쉽니다.
너무 힘들다고 탄식합니다.
그것은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받는 아픔을 이길만큼 크지 못한 것입니다.
인도에서 사역하시다가 추방을 당하신 후 지금 네팔에서 인도를 위하여 사역하시는 조동욱선교사님의 메일이 생각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 좀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모든 사람을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직도 철이 덜 든 것 같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이곳에는 어려운 일, 힘겨운 상황이 많이 생깁니다.
그런 일들 뒤에는 덫에 걸려 나무에 매달린 짐승을 잡아 먹지 못해 안달하며 나무 밑을 어슬렁 거리는 큰 짐승처럼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저들을 미워하지 않는 정도의 믿음은 얻었습니다. 감사하죠.
제게는 저들을 미워할 시간도 없을 뿐더러 그럴 마음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저들을 긍휼이 여기고 격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그러나 더 너그럽게 더 다정하게 더 부드럽게 저들을 품어주고 격려해 주지 못하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들의 나를 향한 이유 없이 미워하는 마음에 감동을 안겨 저들이 미움의 줄을 스스로 풀어놓을 정도로 나의 사랑이 큰 위력을 가지지 못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말 큰 사랑. 아무나 아무 것이나 녹여 내릴 수 있는 농익은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제가 참 마음이 괴롭습니다.”
여러분은 이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십니까?
미운 사람 품는 것도 안된다면 이 선교사를 위하여 무슨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였느냐?’ 의 문제입니다.
지금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의 문제로 스트레스가 심하고 마음이 힘듭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잘 지키기 바랍니다.
더욱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국 헤어질지라도 끝까지 잘해 주기 바랍니다.
다시 만날 때가 반드시 올 것이고 그 때 어떻게 만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 보다 주님 앞에서 서서 그 상황에 대하여 대답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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