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고전학자·번역가·에세이스트…캐나다 현대문학 거장
‘빨강의 자서전’·’녹스’ 등으로 세계적 작가 반열…”예견된 수상”
8일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앤 카슨(76)은 20세기 캐나다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고전학자이며 번역가, 에세이스트다.
고대와 현대 문학, 시와 산문, 창작과 비평, 번역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캐나다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2013년 앨리스 먼로 이후 13년 만이다. 역대 19번째 여성 수상자다.
앤 카슨은 1950년 6월 21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카슨의 아버지는 은행 지점장이었고, 잦은 전근 탓에 그의 가족은 온타리오주의 작은 마을들을 떠돌며 살았다.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훗날 그의 문학에서 반복되는 이방인의 감각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카슨의 운명을 바꾼 것은 고등학생 시절 만난 사포의 시 전집이었다. 사포는 기원전 6세기경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여성 시인이다.
사포를 통해 고전 문학의 세계에 매료된 카슨은 고교 시절 라틴어 교사에게 부탁해 점심시간마다 틈틈이 고대 그리스어를 배웠다. 학교엔 고대 그리스어 정규 수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그를 고전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후 카슨은 토론토대에서 고전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두 차례 대학을 그만두기도 했으나, 결국 1981년 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박사학위 논문은 훗날 첫 책 ‘에로스, 달콤씁쓸한'(1986)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욕망을 고대 그리스 문학의 관점에서 탐구한 이 책은 카슨이 단순한 고전학자가 아니라 고전과 현대를 독특하게 연결하는 작가임을 보여준 작품이다.
카슨은 또 맥길대, 에모리대, 프린스턴대, 미시간대, 뉴욕대 등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고전을 가르쳤다.
그런 카슨은 저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곤 했다. “캐나다에서 태어났고,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쳐 먹고 산다.”
이어 그가 발표한 첫 시집 ‘짧은 이야기들'(1992)과 뒤이은 시집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1995)은 현대시의 영역에서 그의 입지를 다져준 계기가 됐다.
특히 ‘빨강의 자서전'(1998)은 그를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린 작품이다.
헤라클레스가 화살로 쏴 죽인 ‘빨강 괴물’ 게리온의 입장에서 그리스 신화를 다시 쓴 작품이다. 이 책은 운문과 산문, 서사와 서정의 경계를 허물며 고전을 현대적 감수성으로 재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후 ‘남편의 아름다움'(2001)은 그에게 ‘여성 최초 T. S. 엘리엇 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겼다.
‘녹스'(2010)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오빠를 추모하며 쓴 실험적인 책으로 주목받았다.
카슨은 또 1996년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으로 A.M. 클라인 상을 받았다. 그 외 맥아더 펠로우십, 구겐하임 펠로우십, 그리핀시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2020년에는 “고전 연구로 혁신적인 시학을 구축하고 현시대를 인식하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스페인 왕위 계승자가 수여하는 아스투리아스공상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에로스, 달콤씁쓸한’, ‘짧은 이야기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플레인 워터'(이상 난다 펴냄), ‘빨강의 자서전’, ‘남편의 아름다움’, ‘레드 닥'(이상 한겨레출판 펴냄), ‘플로트’, ‘녹스'(이상 봄날의책 펴냄) 등이 있다.
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앤 카슨은 언어를 발굴해내면서 우리가 잊어버린 세계를 다시 일깨워주고, 그 일깨움을 통해 현재를 다시 보게끔 초대하는 작가”라며 “앤 카슨을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언어의 고고학자'”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또 캐나다 작가 가운데 마거릿 애트우드와 앤 카슨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한림원이 앤 카슨의 지적이고 실험적인 면모를 더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