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관의 뚜껑을 분리한 모습. 사진=국립대구박물관 제공/연합뉴스
국립대구박물관, ‘경북 청도군 고성이씨 이징 묘 출토 복식’ 보고서
“큰 키에 영양 상태 양호했지만…기생충 4종·헬리코박터균 감염”
2014년 10월 경북 청도군. 고성이씨 문중의 한 무덤을 옮기는 과정에서 회곽묘(灰槨墓)가 확인됐다.
땅을 판 뒤 석회층을 만들고, 그 안에 관이나 곽을 안치하는 형태였다.
관 뚜껑을 열자 여러 옷감으로 꽁꽁 싸맨 듯한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비저고리에 도포, 적삼, 한삼, 버선 등을 갖춘 ‘청도 미라’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10일 국립대구박물관이 펴낸 ‘경상북도 청도군 고성이씨 이징 묘 출토 복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무덤의 주인은 고성이씨 도사공의 후손인 이징(1580∼1642)이라는 인물로 파악됐다.
무덤 안 피장자가 입고 있었던 의복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묵서는 가로 43㎝, 세로 36㎝ 크기로, 총 4행에 걸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정대영 학예연구사는 보존 처리한 묵서를 분석한 뒤 ‘조선국 경상좌도 청도군 북쪽의 수야리에 거주하는 경진년(1580년)생 이징은 임오년(1642년) 11월 초6일 임신 일에 사망했다’고 해석했다.
62세의 나이로 사망한 이징의 유해에는 그의 삶을 추정할 만한 단서가 여럿 확인됐다.
유해는 발견된 이후 바로 밀봉돼 서울대 의과대학으로 이송됐고 이후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디옥시리보핵산(DNA) 분석, 안정성 동위원소 분석 등을 거쳤다.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홍종하 교수는 보고서에 실은 논고에서 “미라 상태에서의 신장은 165.1㎝”라며 “조선시대 일반적인 남성보다 큰 키에 영양 상태는 양호”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인 15∼19세기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1.1±5.6㎝로 추정된다.
생명 활동이 멈춘 인체가 미라로 변하면 피부와 근육 등이 수축하면서 키가 줄어들기 때문에 생존 당시의 신장은 미라 상태에서 측정한 수치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이징이 과거 먹었던 음식, 앓았던 병의 흔적도 유해에 남아있었다.
CT 검사 결과, 간으로 추정되는 부위에서 가로 22.75㎜, 세로 23.06㎜ 크기의 종괴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폐흡충이 간에 침입해 발육한 것으로 보고, 피장자가 이소폐흡충증을 앓은 것으로 추정했다.
피장자가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돼 있었던 사실도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홍 교수는 “피장자는 총 4종의 기생충에 감염됐는데, 조선시대 사람 중 절반 이상이 감염되어 있었던 토양매개성 기생충과 더불어 폐흡충과 간흡충에도 감염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점은 피장자가 생전에 농작물 외에도 민물고기가 가재 등 민물 갑각류를 날 것으로 섭취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보고서에는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117점을 보존 처리하고 분석한 결과도 담겼다.
사람이 죽었을 때 피장자에게 입히는 습의(襲衣), 피장자를 감싸는 소렴의(小殮衣)와 대렴의(大殮衣), 피장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관 내부를 채워주는 보공의(補空衣)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염습에 사용된 의복 종류와 착장 순서, 장례용품 등에 대한 설명도 포함됐다.
한자 ‘수'(水) 자가 반복적으로 적혀 있었던 종이 뭉치, 각기 다른 방향으로 겹친 채 발견된 버선 3켤레, 피장자의 손·발톱과 치아 등을 담은 주머니 등은 눈여겨볼 만하다.
박물관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는 조선시대 남성 복식 연구를 위한 자료 확보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박물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