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쓴 신간 ‘초록 감각’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의 일부다. 녹색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5월은 그야말로 신록(新綠)의 계절이다. 이 산 저 산, 이 언덕 저 언덕이 온통 녹색 물결로 변한다. 아름다운 풍광이다. 그러나 신록이 보기에만 좋은 건 아니다. 움트는 생명을 상징하는 초록은 우리 머리를 맑게 하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영국 옥스퍼드대 생물학과의 캐시 윌리스 교수는 주장한다. 신간 ‘초록 감각'(김영사)에서다.
초록이 집중력을 높여주고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이 교실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이 학생들의 인지 기능과 성취 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창밖으로 자연 풍경과 녹지가 내다보이는 교실의 학생들은 창문이 없거나 빈 벽이 내다보이는 교실의 학생들보다 시험 결과가 훨씬 더 좋았으며 평가 과정에서 높아진 스트레스 수준도 한층 빨리 떨어졌다. 문화적·사회경제적 요인처럼 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 변수를 고려해도, 창밖으로 녹지가 보이는 학생들의 주의 집중력이 높고, 스트레스 해소도 더 빠르다는 통계 결과는 그대로였다.
또 다른 연구에서 실험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창밖으로 꽃이 만발한 옥상 녹지를 40초만 바라봐도 시험에서 실수할 확률이 현저히 낮아졌다. 같은 시간 동안 밋밋한 콘크리트 지붕을 내다본 대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주의력과 피로 회복력도 크게 향상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세계보건연구소의 페이암 다드반드 연구교수 등이 36개 학교, 2천59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연구 결과에서도 사회경제적 요인이나 가정 환경과 관계없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자연 녹지가 넓을수록 아이들의 작업 기억과 주의력 발달 속도가 빨랐다.
심지어 컴퓨터 화면에서조차 초록색은 위력을 발휘한다.
일본 지바대 환경·건강 및 현장 과학센터 연구진의 실험에 따르면 도시 풍경을 보는 것에 견줘 자연 풍경 사진을 볼 때 학생들의 뇌 활동에서 생리적 안정이 확인됐고, 학생들도 자체평가 설문지에서 자연 풍경을 볼 때 ‘편안하고’, ‘느긋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고 답했다.
초록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일본의 여러 저명한 연구진이 삼림욕을 연구한 실험에 따르면 숲속을 15분 거닌 참가자는 도심을 15분 거닌 참가자에 비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코르티솔의 타액 내 함량이 16%까지 감소하고 맥박과 혈압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도 도시 가로수 수백만 그루의 죽음과 호흡기 및 심혈관 질환에 따른 2만1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며, 건강과 웰빙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한 번에 20분 이상 자연 속을 걷고 일주일에 최소 120분 자연을 만끽해야 한다는 연구도 있다.
책은 이처럼 최신 과학 연구를 한데 모아 정리해 자연이 우리에게 정말로 이롭다는 것을 입증하는 강력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또한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출근길이나 산책길을 선택하는 것부터 교실과 사무실을 꾸밀 때 고려해야 할 점, 나아가 도시의 공공녹지를 계획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까지 개인과 사회가 참조할 실질적인 방안을 제안한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한 조사 과정에서 가장 반가웠던 발견은 우리가 자연과의 상호작용에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을 과학이 뒷받침해준다는 점”이라며 “자연이 우리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이롭다고 느껴질 뿐 아니라 실제로 이롭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신소희 옮김. 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