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윈체스터가 쓴 지식에 관한 책 ‘지식의 탄생’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 전역에서 강도 높은 해저 지진과 엄청난 쓰나미(지진 해일)가 발생했다. 해일은 시속 800㎞의 속도로 안다만제도에 있는 섬을 덮쳐 7천명을 휩쓸어갔다. 희생자 대부분은 안다만제도로 이주해온 인도인들의 후손인 힌두교도들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한 명도 희생되지 않은 종족들도 있었다. 안다만 본토박이인 응게족, 자라와족, 센티넬족이었다. 그들이 죽지 않은 건 쓰나미가 닥칠지 미리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해안에서 낚시하거나 그물을 손질하던 사람들은 주변 환경이 심상치 않게 변화하는 걸 감지했다. 밀물의 속도가 빨라졌고, 모래에서 갑작스레 물기가 사라졌으며 바다색이 변하고, 먼바다의 수평선 위로 물거품과 물보라가 일어났다. 부족민들은 외쳤다. ‘언덕으로 달려가야 해, 위로, 위로!’
그들이 어떻게 이런 지식을 얻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노래를 통해서, 오랜 역사를 거쳐 내려온 시를 통해서, 부족의 연장자들에게서 젊은이들에게로 전해진 이야기를 통해서 얻었다는 등 다양한 설이 난무한다. 다만, 확실한 건 관련 지식이 후대까지 전승됐다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지식의 탄생'(인플루엔셜)은 지식이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인류에 전수됐는지, 그 전달 수단이 수천 년 동안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밝힌 책이다. 영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지질학자인 사이먼 윈체스터는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부터 지식의 보고인 도서관, 백과사전, 인공지능(AI)까지 지식의 역사를 개괄하며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책에 따르면 지식은 예부터 귀했다. 선택된 사람들이 주로 배웠다. 가령,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부족의 지식을 기억할 만한 뛰어난 아이를 어린 나이부터 선발해 교육했다.
일대일 과외도 이뤄졌으나 지식을 배우는 보편적인 장소는 학교였다. 최초의 학교는 4대 문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에서 태동했다. 가르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연필을 잡는 법과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말을 안 듣거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선 가혹하게 매질하기도 했다.
도서관도 학교 못지않은 지식의 보고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학습된 것, 가르치고 토론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논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를 수집한 책들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귀중한 지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자 도서관을 건립했다.
근대에는 백과사전이 편찬돼 지식 전파에 기여했고, 현대에는 컴퓨터와 AI가 발명돼 수많은 데이터를 지금도 양산하고 있다. 특히 AI가 등장하면서 과거와는 비할 수 없는 막대한 정보가 유통되고 있다. 과거에 지식을 얻으려면 학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야 했지만, 이제는 조그만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세계 곳곳에 있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연산, 번역, 정보 찾기, 지리, 철자법 등 인간이 배울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AI가 대신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더는 배울 필요가 없어졌을까.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수많은 데이터에서 정보를 추출해 지식을 얻고, 거기서 지혜를 걸러내려면 많은 경험과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쓰나미를 예견한 부족들의 행동은 오랜 경험에서 추출한 그런 지혜였다. AI가 아직까진 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
다만 AI를 활용하면, 연산과 철자법, 수많은 암기 등 지루한 일을 덜 하는 대신 좀 더 창의적인 일에 매진할 수 있어 더 손쉽게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래의 지능형 기계는 전두엽의 부담스러운 작업을 처리하고 뇌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정신적 지루함과 사실적 지식의 과부하에서 벗어난 인류는 다시 한번 편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릴 것이다.”
584쪽. 신동숙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