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소녀’ 혼인 강요 사례도
남미 페루에서 성폭력 피해를 본 미성년자에게 혼인을 강요하는 형태로 악용돼 온 ‘조혼’이 폐지된다.
3일(현지시간) 페루 국회 홈페이지 및 여성·취약인구부(여성부) 공식 소셜미디어를 종합하면 페루 국회는 전날 저녁 본회의를 열어 미성년자와의 결혼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루이스 아라곤 카레뇨 의원(민중행동당)과 플로르 파블로 메디나 의원(보라당)이 3월과 9월에 각각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결혼 가능 연령을 민법상 성년 나이인 18세부터로 정하는 게 골자다.
이미 결혼한 미성년자라도 제삼자의 개입 없이 본인이 원한다면 혼인 취소 청구를 할 수 있는 내용도 담았다.
앞서 페루 국회는 2007년에 서로 동의만 하면 성관계할 수 있는 나이를 17세에서 14세로 낮춘 바 있다.
이 때문에 결혼 가능 연령도 14세 이상으로 해석돼 왔다. 페루에서는 14세 이상의 청소년이 자녀를 두고 있거나 임신한 상태라면 부모의 동의와 법원 판단을 통해 혼인할 수 있다.
원주민 조혼 관습을 반영한 이 조항은 그러나 한편에선 미성년자 여성에 대한 성인 남성의 성폭력 불처벌 통로로 악용돼 왔다.
또 성적 학대를 당해 임신한 미성년 여성이 결혼을 ‘강요’ 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하면서, 인권 단체를 중심으로 법안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강간범이 남편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루이스 아라곤 카레뇨 의원은 “조혼은 암묵적으로 성폭력을 조장하는 악화로 작용한다”며 “이를 금지하는 건 우리 소녀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하네트 리바스 차카라 의원(자유페루당)도 “미성년자의 결혼은 성 중립적이지 않다”며 “학교 중퇴, 가족 내 폭력이나 따돌림, 건강 악화 등 그 영향이 여성에게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페루 여성부는 ‘청소년 권리 수호를 위한 이정표를 세운 역사적인 날’이라며 환영했다.
난시 톨렌티노 여성부 장관은 RPP뉴스 인터뷰에서 “튼튼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 소녀들이 학업을 마치고 기술직이나 대학에서 경력을 쌓고 폭력 없는 미래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입법 절차를 사실상 마무리한 개정안은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 서명만 남겨 뒀다.
지난달 유엔인구기금은 페루 미성년자 성폭력 수준이 심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에서 “페루에서는 매일 최대 11명의 10∼14세 소녀가 임신하고 그중 4명이 엄마가 된다”며 “다수는 성적 학대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