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 앞둔 선거구 개편… 소수계 투표권 위기론 고조
미국 정치의 양대 진영이 ‘선거지도 전쟁’에 본격 돌입했다. 텍사스에서는 공화당 주도의 선거구 재조정안이 강행 통과되면서 소수계 유권자들의 권리를 위협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캘리포니아는 이에 맞서 민주당 우위 지도를 주민투표에 부치는 맞불 전략에 나섰다.
오는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정치 지형이 대대적으로 재편될 조짐이다.
텍사스 주 상원은 지난 8월 23일 선거구 재조정안을 통과시켜 그렉 애벗 주지사에게 송부했다. 주지사가 서명하는 즉시 효력을 발휘하는 이번 지도안은 공화당에 최대 5석의 연방 하원의석을 추가로 안겨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소수계 밀집 지역을 백인 우세 지역에 분산 편입시키는 방식이 동원돼 ‘인종 및 당파적 게리맨더링’이라는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8월 21일 주 의회를 통과한 ‘트리거 법안(Proposition 50)’을 주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개빈 뉴섬 주지사가 곧바로 서명한 데 따라,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오는 11월 4일 특별선거를 통해 새 지도의 승인 여부를 직접 결정하게 된다. 이는 독립적인 시민 선거구재조정위원회(CCRC) 절차를 15년 만에 우회한 조치다. 주 공화당은 즉각 주 대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프린스턴대 선거혁신랩 샘 왕 소장은 “텍사스는 사실상 무법지대처럼 주법상 제약이 없지만, 캘리포니아는 주 헌법에 절차가 명문화돼 있어 반드시 유권자 투표를 거쳐야 한다”며 두 주의 대조적 상황을 설명했다.
텍사스주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진 우 의원은 “이번 특별회기 동안 공화당은 협박과 강압을 동원해 지도를 강행 처리했다”며 “흑인·라티노·아시안 등 소수계의 정치적 힘을 쪼개기(packing)와 분산(fracking) 방식으로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대로라면 백인 40만 명당 1명의 대표가 배출되는 반면, 라티노는 150만 명, 흑인은 250만 명이 모여야 대표를 가질 수 있는 불평등 구조가 고착된다”고 경고했다.
왕 소장 역시 이번 텍사스 지도를 “현대 투표권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게리맨더링”이라고 규정하며, “중립적 절차라면 얻을 수 없는 5~7석을 공화당이 추가 확보하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민권 단체들도 잇따라 우려를 표명했다. NAACP 법률방위기금의 사라 로하니 변호사는 “2020년 인구조사 이후 첫 재조정이 투표권법 사전승인(preclearance) 제도 없는 상태에서 진행돼 차별적 지도가 무더기로 통과됐다”며 “텍사스 역시 연방 법원의 제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멕시칸법률방위기금(MALDEF)의 토머스 사인즈 대표는 “라티노 인구 증가율이 백인을 앞지른 상황에서 이를 무시한 지도는 불법일 뿐 아니라 정치적 역풍을 불러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오는 10월 연방 대법원이 루이지애나 선거구 관련 사건을 재논의할 예정이어서 판결 결과에 따라 전국적 파급력이 미칠 것으로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의 맞대응은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연방 차원의 투표권법 개정이 없다면 선거 때마다 ‘게리맨더링 전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