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영정과 난중일기 (좌) 이순신 장군의 영정으로 장우성 화백의 1953년작. 현충사에 소장돼있으며 1973년 정부에서 표준 영정으로 지정.(우) 난중일기. 초고본 8권 중 7권이 남아서 현충사에 비치 (현충사 홈페이지 캡처)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을 묻는다면, 십중팔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떠올릴 것이다. 불굴의 투지와 무장의 용맹은 이미 수많은 기록과 이야기로 회자해 왔다.
‘난중일기’를 통해 마주하는 이순신은 거대한 영웅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애환, 유쾌한 술 한 잔의 여유를 간직한 존재였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발발 3개월 전인 1592년 1월부터 장군이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까지 무려 2천539일 동안 작성된 일기다. 간결한 문장 속에 그날의 날씨, 군정(軍政), 전황 등은 물론 자식과 아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동료에 대한 신뢰와 원균에 대한 냉철한 비판 등이 빼곡히 담겨 있다.
때론 별다른 일이 없었던 날, 단지 ‘맑음’이라 적고 넘어가는 담담함도 있다.
그러나 그 담담함 속에서도 장군의 내면은 진한 감정으로 채워져 있다. 한밤중 촛불을 밝히고 국사를 걱정하며 눈물짓는 장군의 모습, 백의종군 끝에 파괴된 수군을 마주하고 절망 속에 주저앉는 장면은 그가 전략가나 지휘관을 넘어 시대의 짐을 짊어진 인간임을 실감케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장군의 술에 대한 기록이다.
난중일기에는 130여 회에 걸쳐 장군이 술을 마신 기록이 등장한다. 열흘에 한 번꼴이다. 주로 부하들과 함께 술을 나누며 전우애를 다졌지만, 때로는 ‘혼술’도 있었다. 어느 날은 소주를 마시고 10번이나 구토를 했고, 또 어떤 날은 대취해 대청에서 잠든 일화도 전해진다.
조선의 대장군도 술 앞에선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일기에는 과하주, 소주, 추로주 등 다양한 술이 언급된다. 과하주는 고급 청주를 증류한 술로, 당시 장군의 지위와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귀한 술이었다. 소주는 병영 소주였을 가능성이 높다. 전라도 강진 병영에서 귀한 쌀 대신 보리를 사용해 만든 병영 소주는 병마절도사가 즐겨 마셨던 술로, 현대에 들어와 김견식 명인이 이어 빚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추로주’다. 가을 이슬을 뜻하는 이름답게, 추로주는 맑고 향기로운 전통 청주로 선비들이 즐기던 술이다. 조선시대 시문선집인 ‘열성어제’에도 등장할 만큼 품격 높은 술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안동에서 복원된 추로주는 찹쌀과 밤고구마로 만든 증류주로, 장군이 마신 발효주와는 이름만 같은 ‘동명이주(同名異酒)’일 수 있다.
시대와 지역이 다르고 술의 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술에 대한 고증과 복원은 전통 계승을 넘어 이순신 장군의 삶과 일상을 현대에 되살리는 작업이다. 경남전통주보존회는 최근 추로주의 복원을 위한 연구와 양조를 이어가고 있으며, 과하주, 소주, 탁주까지 단계적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올여름 발표될 추로주 복원 결과는 장군의 술상을 현대에 다시 올리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난중일기를 통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찬란한 전략보다 더 오래 기억될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만난다. 영웅도 술 한잔에 웃고 울며, 외로움과 고민을 털어낸다.
그의 술잔은 취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동지와의 우정,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조국을 향한 걱정을 담은 잔이었다. 그 술의 이름이 과하주든 추로주든, 그 안에 담긴 정신만은 천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