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악어’로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받은 김혜진 작가
“생존을 위해 ‘악어’가 된 이민자들…저 역시 악어였어요”
“이민자로 살면서 다양한 얼굴의 ‘악어’들을 만났습니다. 오래전엔 판단했고, 시간이 지나선 동정했으며, 지금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악어였어요.”
재외동포청(청장 김경협) 주최 제27회 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대상을 받은 호주 거주 김혜진(43) 작가는 19일 시상식 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민자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수상작 ‘악어’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 과정을 마친 그는 2009년 20대 후반에 남편의 유학을 계기로 호주로 이민을 선택했다. 2019년 소설집 ‘자기만의 방’을 펴내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에 나섰다. 호주에 사는 워킹홀리데이 출신 불법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청소의 신’으로 ‘2025 제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우수상을 수상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김 작가의 ‘악어’에는 호주에서 마주한 다양한 이민자들의 얼굴이 담겨 있다. 박 사장 등 등장인물들이 매일의 생존을 걸고 펼치는 식탁 위의 긴장감이 중심 서사를 이룬다. 모국어의 울타리 밖에서 버텨온 세월과 그 속에서 마주한 생존의 민낯이 작품의 핵심 동력이다.
그는 이민 현장에서 만난 ‘브로커’들의 민낯도 솔직하게 포착했다.
“한국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청년들을 태워 나르고, 인력시장을 전전하며 욕을 먹고, 비인간적인 면까지 드러내는 삶들. 그들은 포식자가 되고 싶지만, 결국 누군가의 가방이 되는 악어처럼 보였습니다.”
작품 속 악어는 “살기 위해 많은 것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의 은유다. “악어는 누구나 가진 냉정함과 이중성, 그리고 생존 본능의 상징입니다. 이민자들은 남의 나라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러 얼굴을 갖게 됩니다. 그 삶의 방식을 저는 진심으로 존중합니다.”
이 메타포는 심사위원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됐다. “문장의 매끄러움보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강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는 ‘악어’를 퇴고 없이 제출했다며 “대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시상식에서 느낀 감정은 달랐다.
“소설은 돈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이번 수상은 큰 위로였습니다. 소감을 발표하다가 눈물이 나올 뻔했어요. 다른 수상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호주 이민 초기, 김 작가는 육아와 생계의 무게 속에서 글쓰기와 멀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희귀암 진단을 받았다.
“아이가 한 살 때부터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약 5년 동안 치료를 받았어요. 일가친척 없이 아이를 키우며 항암치료를 받았던 시절은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오히려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항암 치료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지금은 검사를 중단하고,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는 그의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작가는 “저는 식구들이 다 자러 들어가면 그때 항상 식탁에 앉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고 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후, 글쓰기를 통해 고단한 이민 생활을 버텨냈다.
남편과 딸은 호주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호주 시민이 되면 당당하지 못할 것 같아 시민권을 포기했다. 한국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하다”며 모국어와 글쓰기, 국적에 대한 깊은 애착을 드러냈다.
“K-컬처 덕분에 호주 백인 대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따라다니더군요. 그럴 때 ‘한국인’이라는 뿌리가 더 크게 느껴졌어요.”
이러한 그의 선택은 최근 변화하는 ‘재외동포’ 개념과 맞닿아 있다. 전통적으로 재외동포는 강제 이주한 1세대 중심으로 인식되었으나, 최근에는 김 작가처럼 성인기에 자발적으로 이주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디아스포라의 성격이 적극적인 ‘운명 개척’으로 변모하고 있다.
김 작가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하며 ‘여기는 호주입니다. 역이민을 해야 할까요?’라는 기사를 통해 호주 교민들의 한국 귀환 현상을 다루기도 했다. 당시 한국 독자들의 댓글에서 이민자를 ‘이기적이고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접하며 재외동포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단절된 인식을 아쉬워했다.
이번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에 대해 김 작가는 “정부 차원의 지원과 환대를 받은 것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며 재외동포청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다음 달 KBS 라디오 문학관 출연을 앞둔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모국어로 짓는 나의 집은 크고 넓은데, 이방의 언어로 지켜야 하는 삶은 늘 힘에 부칩니다. 그 버팀목이 제 소설입니다. 천천히, 오래 쓰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