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종 특파원 김경윤 기자 =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일원이 된 이정후(25)는 입단 기자회견에서 아버지인 이종범(53) 전 LG 트윈스 코치에 관한 질문을 무려 세 차례나 받았다.
이정후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첫 공식 행사에서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배웠나’,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미국에서도 쓸 것인가’, ‘아버지보다 더 빠른 주력을 갖고 있나’라는 질문에 답변했다.
이정후는 “아버지에게 직접적으로 배운 건 없지만”이라고 운을 떼며 웃음을 끌어낸 뒤 “인성 문제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잘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등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은 태어나니까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한국에선 이 별명이 조금 오글거렸는데 영어로 말하니까 멋지더라”라고 웃었다.
이종범 코치보다 더 빠르냐는 질문엔 “현역 시절 아버지는 정말 빨랐다. 나보다 빠르다”라며 “지금은 아버지를 이기지만 같은 나이로 비교하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종범-이정후 부자(父子)의 스토리는 이정후가 미국 진출을 선언했을 때부터 미국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현지 매체들은 이정후가 ‘바람의 손자(grandson of wind)’라고 불리는 배경을 설명했고, 아울러 KBO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 코치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MLB 사무국은 이정후의 계약이 확정된 현지시간 14일,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정후와 이종범 코치의 선수 시절 모습을 나란히 올리기도 했다.
마침 이날 기자회견엔 이종범 전 코치와 아내인 정연희 씨가 직접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이종범 전 코치 부부는 기자회견장 맨 앞 열에 앉아 아들의 MLB 첫 공식 행사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이 전 코치는 직접 휴대전화로 아들의 답변 모습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사실 이정후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관련된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주변에선 언제나 이정후를 아버지와 비교했고, 이는 어린 이정후에게 적지 않은 부담과 스트레스로 남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KBO리그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은 뒤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이름을 지울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프로에 입단한 뒤 이정후는 조금씩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주변의 시선과 부담을 이겨내고 이종범 전 코치가 현역 시절 세웠던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리고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역대 최고 대우(6년 총액 1억1천300만 달러)를 받으며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었다.
이제 이정후는 이종범 전 코치가 실패했던 해외 무대에 도전장을 낸다.
이종범 전 코치도 현역 시절 해외 진출의 꿈을 키운 적이 있었다.
해태 타이거즈에서 활약하던 이종범 전 코치는 1998년 엄청난 조명을 받으며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데뷔 초반엔 리그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상대 팀들로부터 ‘현미경 분석’을 당한 뒤부터 고꾸라졌다.
특히 상대 투수가 던진 공에 팔꿈치를 다친 뒤 성적이 크게 떨어졌고, 원형탈모에 시달릴 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정후는 아버지가 경험했던 적응 실패 문제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1년 전부터 다양한 준비를 했다.
MLB의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군더더기를 없애고 스윙 스피드를 올리는 ‘강속구 맞춤형 타격폼’을 개발해 KBO리그 마지막 시즌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정후는 2023시즌 초반, 이 타격자세에 적응하지 못해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시즌 중반엔 예전의 타격폼으로 돌아갔다.
이정후는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에 “성공하기 위해선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라며 “그런 시각으로 스윙에 변화를 줬던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처음 겪는 시간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라며 “더 성숙해졌고, 나에 관한 믿음이 확고해졌다”고 밝혔다.
1년 전부터 MLB 적응을 최우선 과제로 여긴 이정후는 이날 ‘첫 시즌 목표’를 묻는 말에 같은 답변을 내놨다.
그는 “목표를 잡는 것도 좋지만, 내가 빨리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장 힘든 것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한국에선 항상 버스로 이동했지만, 이곳에선 항공편을 이용하고 시차 문제도 있다. 다 적응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