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장애인 그룹홈 설립한 천노엘 신부[엠마우스 복지관 제공]
6·25 참상 듣고 한국서 봉사…고향 아일랜드서 별세
국내 첫 장애인 ‘그룹홈’ 설립 등 장애인들에 헌신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가려면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항상 인내하고 사랑해달라던 당부가 마지막 말씀이 됐죠.”
국내 첫 장애인 그룹홈 설립자인 천노엘(93) 신부가 지난 1일 향년 93세에 고향 아일랜드에서 선종했다.
6·25 전쟁의 참상을 듣고 1957년 한국에 왔다가 평생 발달장애인 권익 보호를 위해 헌신했던 천 신부는 고향 아일랜드에서 눈을 감기 전까지도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에서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2일 엠마우스 복지관에 따르면 천 신부는 1957년 한국에 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주민들을 도왔다.
사목 활동을 하면서 1960년대 후반부터는 무등갱생원에 주 1회 봉사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알게 된 지적장애인 소녀의 죽음을 계기로 장애인 자활에 평생을 힘쓰게 됐다.
연고자가 없던 소녀가 1978년 폐 질환으로 숨지자 병원 측은 의학용으로 시신을 사용하게 해주면 대신 장례를 치러주겠다고 했다.
천 신부는 직접 묘를 쓰고 “사회를 용서해 주시렵니까’라는 문구를 묘비에 새긴 뒤 자기 권리를 주장할 힘이 없는 발달장애인들이 격리되지 않고 사회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도록 애썼다.
그는 안식년을 활용해 외국 사례를 직접 살펴본 후 1981년부터 한국 최초로 ‘그룹홈’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광주 남구 월산동의 한 주택에서 지적장애 3급 여성과 봉사자 2명이 살게 하며 재가 장애인 서비스라는 새로운 복지 모델을 제시했다.
1985년에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와 독일 까리따스의 도움으로 광주에 엠마우스 복지관을 설립해 조기 교육, 직업 훈련, 재가 서비스 등을 지원하면서 장애인들이 생애 주기에 맞게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했다.
천 신부는 수시로 그룹홈을 찾아 아이들과 놀아주며 아버지이자 할아버지 역할을 자처했고 조금 다른 가족의 형태일 뿐이라고 이웃들과 장애인 가족들을 설득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올 때 메고 왔던 가방을 6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때도 들고 갈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지만 장애인 작업장, 중증장애인 활동센터 등 복지 사업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큰손으로 임했다고 동료들은 전했다.
고등학생 신자와 지도신부로 만나 봉사하다가 30년 넘게 함께 일한 이춘범(61) 엠마우스 보호작업장 원장은 “내 자식 잘 돌봤다고 상 받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개인에게 주어진 상은 모두 거절하셨다. 법인과 장애인 당사자에게 주는 상만 받으셨다”고 회고했다.
또 “지난 4월 말 신부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아일랜드로 갔을 때도 10분도 채 허락되지 않은 면회 시간 내내 장애인 친구들을 기다리고 사랑해달란 말씀만 반복하셨다”고 떠올렸다.
이 원장은 “한국이 예전보다 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나라가 된 만큼 장애인에게도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길 바란다는 신부님의 생전 바람대로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