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볼먼은 전날 테네시주(州) 내슈빌의 한 병원에서 혈액 관련 질환으로 사망했다.
볼먼은 고교 동창 하워드 케일런과 함께 보컬을 맡은 밴드 터틀즈 멤버로 1965년 데뷔 싱글을 발표했다.
통통한 체격에 검은테 안경을 쓴 볼먼은 개성 있는 뮤지션들이 쏟아져 나온 1960년대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일반적인 록스타의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볼먼의 부드러운 음성은 ‘꽃과 사랑’으로 상징되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
특히 터틀즈가 1967년 발표한 해피투게더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비틀스의 ‘페니레인’을 밀어내고 정상에 오르면서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현지 언론이 ‘사랑과 긍정의 송가’로 평가했던 해피투게더는 50여년이 지나도록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7년 홍콩의 왕가위(왕자웨이) 감독이 발표한 영화 ‘해피투게더’에서는 리메이크 곡이 엔딩 곡으로 사용됐고, 한국에서는 라면 광고에 사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볼먼은 1970년 터틀즈를 해산한 뒤, 다른 보컬 케일런과 함께 미국의 천재 뮤지션 프랭크 자파의 밴드 ‘마더스 오브 인벤션’에 합류했다.
다만 그는 레코드 회사와의 법적인 분쟁 탓에 본명 대신 케일런과 함께 ‘플로 앤드 에디’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자파의 밴드에서 탈퇴한 이후에도 볼먼과 케일런은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앨리스 쿠퍼 등 다양한 뮤지션의 앨범에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는 등 활동을 이어 나갔다.
45세 때인 1992년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볼먼은 학업을 이어 나가 박사학위까지 취득했고, 내슈빌의 벨몬트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됐다.
볼먼은 생전 잡지 ‘피플’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모든 것이 꿈만 같다”고 자신의 삶을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