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서 나온 탄피 M16…’시민군 카빈총’ 검시기록 오류
무심한 표정으로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5월의 꼬마’ 조천호 씨의 부친은 계엄군의 총탄에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영정 사진의 주인공 조씨의 사망 원인은 그동안 시민군 총탄에 의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는데 진상규명조사위의 노력으로 확실히 바로잡아졌다.
7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천호 씨의 부친 조사천 씨는 5월 항쟁 당시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 발포 희생자가 명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일부 왜곡 세력은 총상 희생자 중 상당수가 시민군이 쏜 총탄에 사망한 것이라고 잘못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조사위는 1997년 5·18 묘지(구묘지)를 지금의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조씨의 무덤에서 나온 탄두 파편을 국방부로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국방부는 해당 파편이 계엄군이 발사한 M16 탄환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해, 조씨의 당시 검시 기록은 잘못된 것임이 명백해졌다.
사망 장소로 기재된 광주 기독병원도 조 씨의 시신이 확인된 곳일 뿐, 피격 지점은 계엄군 집단 발포가 자행된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 주변이라고 조사위는 결론 내렸다.
조씨의 부인은 다음 날인 22일 광주 기독병원에서 조씨의 시신을 확인했고, 같은 날 병원에서 시민군에게 인계된 12구의 시신 속에 포함돼 상무관으로 옮겨졌다.
당시 5살이던 조씨의 아들 조천호 씨는 상무관에서 부친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이 1987년 외신에 보도되며 5월의 비극을 알린 상징이 됐다.
조씨처럼 시민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카빈 사망자 26명을 조사위 법의학 자문단이 재검증한 결과 이 중 25명이 계엄군의 M16 소총에 숨졌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기존 검시조서는 시신의 총탄 사입구와 사출구의 크기만으로 M16 사망인지, 카빈 사망인지 특정했는데 법의학적으로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계엄군의 총격 사망이 명백하거나 시민군이 무장하지 않은 시점(5월 21일 이전)에 사망한 희생자도 카빈에 의한 사망으로 기록됐다.
최초 M16으로 기록됐다가 나중에 수정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전남대병원 응급환자 기록지가 유일한 사망 기록인 김광복 씨의 경우에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민의 총에 총상을 입었다’고 기재돼 카빈 사망이 맞는 것으로 판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