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미국으로 입양…양부모 학대 속 시민권 누락
2016년 추방돼 가족과 생이별…홀트·한국 정부 상대로 법정 투쟁
“저는 끼어있는 처지입니다. 일생 대부분을 양쪽에 낀 채로 살았죠. 하지만 제 딸들에겐 아빠가 돼줘야 하는데…”
미 CNN 방송은 28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수십년 만에 강제 추방된 한인 남성 애덤 크랩서(49)씨의 사연을 전했다.
크랩서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4살때이던 1979년 미국으로 입양됐으나 양부모의 학대와 파양으로 시민권 신청조차 하지 못한 채 사실상 불법체류자 딱지를 달고 끝내 2016년 강제 추방된 상태다.
그는 2019년 낯선 고국인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시작해 지난해 입양 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1억원 배상 판결을 얻어냈지만 여전히 부인과 딸들이 있는 미국 땅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CNN은 이같은 크랩서씨 사연을 놓고 “악몽같은 수십년”이라면서 “부당하게 해외 입양인 수만명을 시민권 없이 잊히게 만든 미국 법의 결함으로 꼽히는 사례”라고 지목했다.
크랩서씨는 이번 CNN 인터뷰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모든 걸 해봤지만 안됐다”면서 애끓는 심정을 토로했다.
“저는 딸을 돌보고, 딸의 삶에 함께 있고 싶었어요. 딸의 아빠가 되고, 살면서 나는 갖지 못했던 것을 딸에게는 해주고 싶었습니다.”
크랩서씨는 특히 자신이 겪어야 했던 기구한 삶이 아이들에게만큼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나는 끼어있는 신세”라며 “양쪽 사이에 낀 채로 일생 대부분을 살았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아이들도 고향이 없는 채로 살아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한국과 미국 어디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크랩서씨의 기구한 삶은 그간 양국 언론에서도 조명해왔지만 지난 23일 서울 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다시 주목받았다.
크랩서씨는 지난해 1심 판결이 한국 정부의 책임을 비껴갔다며 항소했고, 홀트는 ‘당시 입양 기관으로 직무를 다했다’고 주장하며 각각 항소한 상태다.
크랩서씨는 이날 법정에서 “나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아는 모든 건 미국 문화이며, 누구도 내게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지 않았다”며 어떤 고향땅과도 단절된 처지라고 호소했다.
그의 한줄기 희망은 미국 하원에 계류 중인 ‘2024 입양인 시민권 법안’이라고 CNN은 짚었다.
지난 6월 발의된 이 법안은 해외 입양아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주도록 하는 것으로, 2000년 제정된 아동 시민권 법의 빈틈을 바로잡으려는 취지다.
실제로 크랩서씨는 이전 법안 통과 당시 25살이어서 18살 미만에게만 적용되던 시민권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크랩서씨는 하지만 미 의회의 이전 사례로 볼 때 “아마도 우리 때에는 통과되지 못할 것 같다”며 씁쓸한 회한을 감추지 못했다고 CNN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