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토요일, 애틀랜타 화야 국제문화센터에서 열린 ‘한국계 미국인 연석 회의(Korean American Convening)’의 테이블에 앉았다. 교육자, 학생, 조직가, 비영리단체 활동가, 시의원, 주의원, 주의원 후보, 뉴욕, LA, 시카고 등지에서 내려온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사무총장과 국장, 미주한인커뮤니티재단 대표까지 —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붙들고 살아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총 4 시간 동안, 인사말, 강연, 식사, 패널토론과 소그룹 토론이 이어졌다.
아시안아메리칸옹호기금(AAAF), 데모랩 사우스(Demo Lab South),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NAKASEC)가 공동 주최하고 한인커뮤니티재단(KACF)이 후원한 이날 행사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었다. 전국 단위 활동가와 조지아 지역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주 한인 사회의 정치·사회적 역량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장이었다. 최인혜 하나센터 사무총장과 김정우 미교협 사무총장의 동시 통역 덕분에 세대와 언어의 벽 없이 토론이 이어졌다.
철수 리에서 골드 라인까지 — 우리가 잊어선 안 될 역사
행사의 첫 순서는 김갑송 미교협 나눔터국장의 미주 한인운동사 강연이었다.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군사정권을 피해 1981년 미국으로 망명한 윤한봉 선생의 삶과 사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윤한봉 선생은 재미한국청년연합과 한겨레운동미주연합을 조직하고 미국 각지에 한인 커뮤니티센터를 세우면서, 뿔뿔이 흩어진 이민자들을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묶어내는 데 헌신했다. 그의 철학은 1994년 미교협으로 결집, 뉴욕·뉴저지 민권센터, 버지니아 함께센터, 펜실베니아 우리센터, 일리노이 하나센터, 미교협 텍사스 등으로 이어졌고, 미국 최대 규모의 한인·이민자 권익 네트워크가 탄생했다. 이들의 활동은 이민자 권익 보호, 정치 참여 확대, 청소년 교육, 사회복지는 물론이고, 서류미비 청년과 입양인 시민권 문제, 흑인 이민자 공동체와의 연대, 평화 운동까지 폭넓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강화된 이민 단속 속에서는 24시간 핫라인을 운영하며 불안 속에 살아가는 이민자들을 돕고 있다.
이어 김정하 박사(CRC대표)가 미주 한인(아시안)의 역사를 짚어냈다. 그녀가 소환한 첫 번째 이름은 ‘철수 리’였다. 197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에서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한인 청년 철수 리를 구하기 위해 한국계·일본계·중국계 학생과 변호사들이 국적과 언어를 넘어 연대했다. ‘Free Chol Soo Lee 운동’은 미주 아시아계가 ‘우리 안의 누군가’라는 공동체 의식을 최초로 각성한 사건이었다.
애틀랜타에도 그런 싸움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지역 정치인들이 새 대중교통(MARTA) 노선 이름을 ‘Yellow Line(옐로우 라인)’으로 밀어붙이자 한인·베트남계·중국계 커뮤니티가 9개월에 걸친 시위와 청원으로 맞섰다. 결국 ‘Gold Line(골드 라인)’으로 바꿔낸 이 작은 승리는, 이름 하나를 두고도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을 지켜낼 의지가 이 공동체에 살아있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김정하 박사는 “우리가 스스로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정체성을 세우는 출발점입니다.” 그 역사를 바탕으로 세워진 한인봉사센터(이후 CPACS·CRC)는 “또 다른 철수 리가 나오지 않도록” 이 자리를 지켜왔고, 2005년부터 이어진 TEA Walk는 그 정신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매개가 됐다.
“다음 세대 또는 영웅을 기다리지 말라”
오후 패널 토론에 오른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한인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써온 이들이었다. 예술가 니콜 강(Nicole Kang), 둘루스 시의원 사라 박(Sarah Park), 조지아주 하원의원 샘 박(Sam Park). 이들이 꺼내 든 공통된 화두는 하나였다. “다음 세대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행동하라.”
사라 박 시의원은 “나는 정치인이 되려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교회와 학교, 기업과 세대를 잇는 공동체 생태계가 있어야 한 명의 정치인이 나올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오랜 현장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샘 박 의원의 이야기는 더 개인적이었다. 어머니의 암 투병 과정에서 의료보험 정책이 얼마나 삶을 좌우하는지 절감한 것이 그를 정치의 길로 이끌었다고 했다. 그는 “이민자와 소수민족을 겨냥한 정치적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며 한인과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조직화와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강하게 촉구했다.
니콜 강의 발언은 예상 밖의 울림을 주었다. 2021년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 이후 그는 캔버스와 붓으로 한인과 아시아계의 경험을 기록해왔다. “예술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라는 그의 말은, 변화는 투표장과 의회 밖에서도 만들어진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역사에서 행동으로 — 소그룹 토론의 현장
패널 토론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소그룹으로 나뉘었다. 내가 있는 소그룹에서는 사라 박 시의원 사회로 에모리대학 학생, 학생연합 활동가, 지역 활동가, 김갑송 미교협 국장, 윤경복 미주한인커뮤니티재단 사무총장 등이 한 테이블에 앉아 현재 조지아주 한인들이 겪고 있는 교육·이민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 토론했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
귀넷(Gwinnett) 카운티 공립 중학교에서 8년째 교사로 일하고 있는 아리 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출석도 문제없고, 행동도 문제없고, 성적도 괜찮아요. 그래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죠.” 그 모델 마이너리티의 괜찮음 뒤에 무엇이 쌓이는지, 학교는 묻지 않는다. 정서적 고립과 소속감의 결핍이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언어 장벽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구조적이었다. 귀넷처럼 다양한 인종이 모인 대형 학군도 카운티 전체에 통·번역사가 한두 명에 불과하다. 부족분은 외주 업체에 맡기지만, 교육 현장의 맥락을 모르는 직역(直譯)은 오히려 혼란을 부른다. “집으로 오는 공문 중 제대로 번역된 것을 단 한 장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참석자도 있었다.
1세대 한인 부모의 최대 관심사는 아이비리그 진학이다. 방과 후 학원, SAT 준비, 사립학교 전학 등 교육을 철저히 ‘내 아이 한 명’의 문제로 접근한다. 한 참석자는 이 괴리를 정면으로 짚었다. “부모들이 원하는 것과 우리가 하려는 것 사이의 간극이 항상 문제예요. 그런데 커뮤니티 활동에 깊이 참여한 아이들이 결국 아이비리그도 가더라고요.” 두 목표가 대립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이미 현장에 있다.
도서 금지와 DEI 축소 정책도 문제다. 유색인종의 역사로부터 우리를 분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역사를 지우는 것이다. 시민권 운동 없이 1965년 이민법 개정도 없었고, 오늘날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한인 커뮤니티 일부에서 자신을 더 넓은 이민자·유색인 집단과 분리해 바라보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특수교육에 대한 낙인도 빠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특수 필요 학생을 별도 학교로 보내는 구조여서, 미국의 통합 교육 방식 자체가 낯설다. 교사가 언어 치료나 학습 지원을 권유해도 부모는 ‘내 아이가 약한 아이로 낙인찍히는 것 아니냐’며 거부한다. “신뢰를 쌓는 데 1년이 걸리는데, 중학교는 3년밖에 없어요.” 아리 조의 말은 현장 교육자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토론이 끝날 무렵 사라 박 시의원은 덧붙였다.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 갔다가 자녀 대학 진학 후 다시 귀넷으로 돌아오는 패턴이 반복된다고. 그 빈 시간 동안 공립학교는 한인 커뮤니티라는 지지 기반을 잃는다.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힘도 쌓이지 않는다.
텅 빈 식당과 떠나는 이민자들이 떠나는 공항, 이민 단속의 일상화
두 번째 토론 주제는 훨씬 묵직했다. 김갑송 국장이 숫자를 꺼내는 순간 테이블이 얼어붙었다. 현 행정부 출범 이후 약 300만 명의 이민자가 미국을 떠났다. 200만 명은 자발적 출국, 100만 명은 체포·추방. 필라델피아 인구(150만)의 두 배다. “한국전쟁 때 300만 명이 죽었어요. 그 숫자입니다.”
둘루스(Duluth) 식당가는 서류 미비 이민자 노동자들에게 크게 의존해왔다. 한 참석자는 “우리 가족이 여행사를 운영하는데, 사람들이 공항 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고 했다. 이민자들이 짐을 싸고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한인 사업체는 직원도, 손님도 동시에 잃고 있다.
귀넷카운티는 전국 추방 건수 4위다. ICE는 인접 카운티와 MOU 체결을 통한 이민자 인계를 추진 중이다. 사바나 현대·LG 공장 급습 이후 지역 학교들은 교사들에게 ICE 요원 대응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공장도, 학교도, 이제 안전지대가 아니다. 정체성 위기와 이민 단속의 공포가 한인 다음 세대의 교실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김갑송 국장은 자진 출국한 이민자의 90% 이상이 “언젠가 돌아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했다. 20년 넘게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탈출이다. 트럼프 이후 시대,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경로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주변인을 그만둘 시간
4시간의 기조 강연과 토론이 끝나고 행동 계획 양식이 돌아왔다. 전화 뱅킹, 도어 노킹, 소셜미디어 정책 제안, 청소년 프로그램 확대, 작은 칸들이 채워졌다.
이날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이 공유한 인식은 하나였다. 인종이나 소수자 차별, 언어 접근성, 이민 단속, DEI 축소, 특수교육 낙인 등 모든 것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우리 공동체를 주변으로 밀어두려는 힘에 맞서, 조직된 힘으로 응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전국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이 말한다. “우리가 애틀랜타를 보고 있어요. 여기서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그 무언가가 무엇이 될지는, 이날 양식을 채운 손들에 달려 있다. 전국적 연대 네트워크와 지속적 협력, 청소년 리더십 프로그램 확대가 필요하다. ‘또 다른 철수 리가 나오지 않도록’ 커뮤니티 안전과 권익을 지키는 일은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
애틀랜타 한인 커뮤니티는 수십 년 동안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역사를 되찾아왔다. 이제 그 역사 위에서 더 강한 조직된 힘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다. 이날 화야 국제문화센터를 가득 채운 활동가들의 눈빛에서, 나는 그 가능성을 보았다. ‘Korean American Convening’은 그 여정의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 필자 소개
전희경 박사는 조지아 지역 커뮤니티 조직가이자 데이터 과학자로, 이 글은 2026년 5월 30일 애틀랜타 화야 국제문화센터에서 열린 토론에 직접 참석해 작성한 기고문입니다. 필자는 오마이뉴스, 뉴스M, 겨자씨신문에 기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