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아티스트 콜린진 작가…5개월간 작업한 종묘제례 작품 공개
가야금엔 크루아상·장구채 대신 지팡이…프랑스서도 8점 전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서 지내는 ‘종묘제례’는 유교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종묘친제규제도설 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 屛風)은 종묘의 주요 건물은 물론, 이곳에서 거행되는 의식과 각종 절차, 상차림까지 상세하게 담고 있다.
그 중 ‘오향친제반차도'(五享親祭班次圖)는 왕이 직접 종묘제례를 지낼 때 참석했던 제관, 문무백관 등의 자리 배치를 그린 그림으로, 등장인물만 최소 200명이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레고 블록으로 이를 표현할 수 있을까.
약 2만1천개 블록을 조합해 ‘레고 오향친제반차도’를 만든 콜린진(본명 소진호) 작가는 최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무언가 ‘끌리는’ 듯한 마음으로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약 5개월간 작업한 작품은 종묘제례의 생생한 순간을 담았다.
검은 옷을 입은 제관부터 왕과 왕세자, 붉은색 옷을 입고 제사를 참관하러 온 종친들까지 209명의 모습을 꼼꼼하게 표현했다. 복장부터 작은 장신구까지 그림 그대로다.
콜린진 작가는 “레고 블록을 자르거나 칠하지 않고 서로 조합해서 만들었다. 사람 1명당 적게는 70개부터 많게는 200개까지 블록이 쓰였는데 혹시나 부족할까 걱정이었다”고 털어놨다.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도 많다.
악대가 연주하는 타악기는 해적선 모형의 통나무로, 장구채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법 지팡이로 각각 구현했다. 가야금 하단의 부들줄을 묶은 부분은 크루아상 블록 조각이 쓰였다.
콜린진 작가는 “자세히 보면 깨알 같은 재미가 있을 것”이라며 “‘오향친제반차도’ 그림에 나온 모습을 여러 차례 들여다보면서 상상하고 조합하면서 완성했다”고 말했다.
“복식이나 모습이 같은 인물이 많죠? 주요 특징을 잡아서 레고 블록을 서로 맞춰보는 모형화 작업이 가장 오래 걸렸어요. 그러다 보니 하루 8시간씩 작업하기 일쑤였죠.”
오랜 고민 끝에 완성한 작품은 앞으로 2년간 종묘 향대청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이홍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학예연구사는 “종묘제례를 말로 설명하려면 사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고 좋아할 만한 예시를 보여주고자 협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콜린진 작가는 ‘우리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와서 편히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종묘제례가 이런 거야?’, ‘우리 문화재(국가유산)가 이런 모습이구나’ 흥미를 갖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며 “한국의 ‘끌리는 맛’, ‘끌리는 멋’을 자연스럽게 알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해 첫 개인전을 열었던 그는 최근 잇달아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달 24일부터 10월 5일까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한국의 놀이’ 특별 기획전에서 참여해 레고로 만든 각시탈과 하회탈, 학춤 등 총 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콜린진 작가는 “유럽에서는 레고의 영향력이 더욱 큰데 영광”이라며 “우리 문화유산을 즐겁게, 또 쉽게 받아들이는 중간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만의 레고 디자인을 만들기까지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장난감 회사인 한립토이스의 창업주인 소재규 회장으로, 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어린이 놀이문화 공간인 한립토이뮤지엄을 열기도 했다.
“20대 중반부터는 레고에 푹 빠져서는 아마 고급 차 한 대 값은 거뜬히 썼을걸요?” (웃음)
아내인 최현주 백설기 아트앤북스 대표와 딸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다.
그의 예명인 ‘콜린진’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콜린 퍼스와 자신의 이름 ‘진호’를 합쳐 만든 말이다. 다양한 작품은 딸과 놀아주기 위해 고민하던 아빠의 흔적이 담긴 결과물이다.
콜린진 작가는 “정말 좋아서, 욕심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해온 일”이라며 “처음부터 레고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아직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당초 정조(재위 1776∼1800)가 1795년 수원 화성으로 행차한 일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도 고려했었다는 그는 “종묘제례를 해보고는 포기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문장 교대 의식 등 여러 주제를 고민 중입니다. 좋아하는 일이니 또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