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즐거운 궁리 많은 삶이 바로 보물이지요”

수녀원 입회 60주년 단상집 ‘소중한 보물들’ 출간

“60년 수도 생활이 준 선물은 늘푸른 소나무 같은 평상심 같아요. 중심이 잘 잡힌 안정감… 그런데 수도 생활 60년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에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책으로 써도 될 만큼요 (웃음)”

쉽고 간명한 정다운 언어로 삶과 사랑을 노래해온 시인 이해인(79) 수녀는 1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오랜 수녀 생활이 준 선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웃으며 답했다.

1964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수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최근 수도회 입회 60주년 기념 단상집 ‘소중한 보물들’을 펴냈다. 그동안 써온 180권에 달하는 일기장을 다시 뒤적이며 60년간 품어온 이야기들을 짧은 글의 형태로 담았다.

책에 나타난 이해인 수녀는 어떻게 하면 남들을 기쁘게 해줄까를 늘 궁리하는 사람이다. 좋은 시나 글귀를 모아 만나는 사람에 맞춰 나눠주기를 즐기고, 나뭇잎이나 꽃잎, 조가비, 솔방울 같은 작은 물건을 모아 선물을 만들어 독자나 지인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그런 자신에게 본인이 직접 붙인 별명이 있다. ‘기쁨 발견 연구원’이다.

이번 단상집에는 저자가 엄격하고 금욕적인 수도원에서 철저한 규칙에 따라 수도자로 생활하는 와중에 길어 올린 잔잔한 삶의 기쁨과 행복, 그리고 주변인과 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흔히 ‘수녀’ 하면 사람들은 극기, 희생, 고통, 절제, 인내 이런 것을 주로 떠올리는데, 저희가 상징적으로 그런 사람이기는 하지만, 저희 안에도 꽃마음, 별마음도 있어요. 반세기 동안 제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도 일반적인 언어로 친숙한 사물을 통해 노래한 것을 많이 공감해주셨기 때문일 겁니다.”

책 제목의 ‘소중한 보물들’과 관련해 저자의 보물은 무엇이 있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물론 함께 사는 도반(道伴)인 수녀님들이 있다”면서도 “애착하는 물건 중에는 솔방울하고 조가비가 있다”고 했다.

“(수도회가 있는 부산) 광안리의 산에는 솔방울이, 바다에는 조개껍데기가 있지요. 이런 사물을 아끼고 좋아합니다. (지인이나 독자에게) 달리 다른 것을 선물할 수가 없기에 조가비에 성경 구절을 적어 주거나, 솔방울에 기도의 의미를 붙여서 나눠주곤 하지요. 즐거운 궁리가 많은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보물인 것 같아요. (웃음)”

이날 이해인 수녀의 단상집 출간 간담회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여든을 코앞에 둔 이 노(老)수녀의 만면에는 새 책을 출간해 독자들을 만난다는 기쁨과 설렘이 가득했고,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왜 ‘기쁨 발견 연구원’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는지 단박에 이해가 갈 만큼 그에게선 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했다.

이해인 수녀는 2008년 직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 등 고된 투병의 과정을 거쳤다. 이때의 경험들은 그의 내면을 더 단단히 여물게 했다.

“제가 저를 봤을 때 감성적이고 여린 줄로만 알았는데, 투병하다 보니 담대하고 씩씩한 모습도 있더라고요. 저는 아마 수녀가 되지 않았다면 방송국 피디 같은 일을 했을 것도 같아요. 만약 20대로 돌아간다면 머리에 물들이는 것도 해보고 싶고요. 하지만, 이젠 제 백발을 보며 ‘시간의 선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생을 더 행복하고 명랑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새 책을 내고 독자들과의 만남을 앞둔 지금도 그는 여전히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20년 정도 더 젊었다면 주부들을 모아놓고 좋은 시 읽기 모임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어린 왕자’ 같은 아름다운 동화도 한 편 써보고 싶은 꿈이 있지만 어려워서 못 이룰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동시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면 좋을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망설임 없이 “조금만 더 남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가족 이기주의가 심한 것 같아요. 어린 시절 부산으로 피란을 가서 조그만 셋방에 살았는데, 집주인이 남이 아니라 정말 친척같이 대해주셨던 게 지금도 기억나요. 내 가족도 소중하지만 한 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 모두를 서로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 그런 영성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김영사.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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