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갈등으로 촉발된 유가 급등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 식료품과 생필품 전반으로 확산되며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이른바 ‘전쟁 인플레이션(warflation)’을 유발하며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광범위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의 라이언 넌 연구국장은 지난 17일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 브리핑에서 “유가 상승은 단순히 주유소 가격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의 가격을 끌어올린다”며 “이미 소비자물가 지표에서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한 달 사이 약 1% 가까이 오르며 이전보다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넌 국장은 유가 상승이 생활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 대해 “석유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물류와 생산 전반의 핵심 요소”라며 “운송비 상승이 결국 식료품과 소비재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유가가 다시 하락하더라도 소비자 가격에는 즉각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마트와 식당 등 일상생활 현장에서 체감하는 물가 부담은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넌 국장은 “가격 상승과 하락은 비대칭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체감 물가 부담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물가 상승의 가장 큰 피해 계층으로는 저소득층이 지목됐다. 넌 국장은 “저소득층은 소득 대비 에너지 지출 비중이 높고 대체 소비 선택이 어려워 충격이 더 크다”며 “저축 여력까지 부족해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둔화로 고용까지 위축될 경우 저소득층의 경제적 어려움은 한층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가 급등이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에도 심각한 파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UC 리버사이드의 아닐 디올랄리카 교수는 “석유는 연료를 넘어 비료, 플라스틱, 의약품 등 수많은 제품의 핵심 원료”라며 “유가 상승은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를 동시에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의 피해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됐다. 디올랄리카 교수는 “중동과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이미 식량 가격 급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소득이 낮은 국가들에서는 식료품 가격 상승이 곧 생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비료 가격 상승으로 농업 생산이 위축되면 올해 후반부터 식량 공급 부족과 추가적인 가격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예멘, 수단, 소말리아처럼 이미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국가들은 유가와 식료품 가격 상승의 충격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는 나라들로 꼽혔다.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 역시 지역 전쟁의 여파로 경제 붕괴 위험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시아에서는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큰 압박을 받을 수 있는 국가로 거론됐다. 특히 인도는 원유뿐 아니라 액화석유가스(LPG)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상당 부분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어 대표적인 취약 사례로 지목됐다.
디올랄리카 교수는 “인도에서는 LPG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 현상이 도시 서민과 농촌 빈곤층 모두를 압박하고 있다”며 “이는 농민 부채 증가와 도시 비공식 노동자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네소타대의 윌리엄 비먼 명예교수는 이란과의 갈등 해법으로 군사·경제적 압박보다 외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먼 교수는 “이란은 역사적으로 외세 개입에 민감하며 국가 주권 수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며 “단순한 경제적 강압이나 군사적 압박만으로는 이란 정부를 물러서게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혁명 이후 형성된 주권 의식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며, 핵 협상과 관련해서도 일정 기간 농축 중단과 같은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먼 교수는 “이란의 시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협상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갈등 완화를 위한 외교적 접근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