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삼일절 기념사 울림…고려일보·고려극장 언급하며 정체성 강조
“고려인들은 한국어와 종교를 지킬 기회를 박탈당했지만, 우리의 행동은 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증명해 왔습니다. 조상들이 꿈꾸던 당당한 한국인으로 이 자리에 선 것은 큰 축복입니다.”
5일 동포사회에 따르면 지난 1일 미국 애틀랜타한인회(회장 박은석)가 조지아주 둘루스 애틀랜타 콜리세움에서 개최한 제107주년 삼일절 기념식에는 특별한 연사가 단상에 올랐다.
주인공은 기념사를 낭독한 하나 섹스턴(40·한국명 손하나) 미국 고려인협회장이다.
손 회장이 서툴지만, 진심을 담은 한국어로 기념사를 낭독하자 수백명이 참석한 행사장은 숙연해졌다. 그가 기념사 마지막에 주먹을 불끈 쥐고 “만세”를 세 번 외치며 고려인 동포들의 한과 자부심을 함께 쏟아내자 참석자 일부는 눈물을 훔쳤다.
그는 기념사에서 고려인들이 척박한 중앙아시아 땅에서 갖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어떻게 정체성을 지켜왔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손 회장은 3·1운동 4주년에 창간돼 올해 103주년을 맞은 카자흐스탄 한글신문 ‘고려일보'(창간 당시 명칭 ‘3월 1일 신문’)을 언급하며 “조국 해방을 위한 투쟁의 전령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1932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창립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뿌리내린 고려극장에 대해 “일제강점기 한반도 밖에서 우리 민족 문화를 대표한 가장 오래된 한국 극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선조들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중앙아시아로 이동해야 했다”며 “오늘날에도 한식, 예술, 문화 등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게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의 기념사는 오는 9월 중순 서울에서 열리는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 세계 60만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현재 고려인 동포는 우즈베키스탄(17만명), 카자흐스탄(12만명), 러시아(10만명) 등 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집중해 43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한국(11만명)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지에도 수천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 내 고려인 커뮤니티는 손 회장과 같은 전문직 리더들을 중심으로 현지 한인 동포사회와 연대를 강화하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 회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고려인 선조들을 대표해 모든 한국인과 함께 삼일절을 기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한인 동포들과 손을 잡고 만세를 외칠 때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한-중앙아 정상회의’와 관련해서는 “한국과 협력하면서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이어가는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며 “전 세계 고려인들이 고국과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러시아 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니에서 태어나 카자흐스탄에서 자랐고, 이후 미국에 정착한 고려인 3세다. 한국어와 영어, 러시아어, 카자흐스탄어 등 4개 국어를 한다.
알파라비 카자흐국립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뒤 우송대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그는 석사 준비 당시 영국의 한 유명 대학에서도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모국을 선택했다.
현재 미국 내 유일한 고려인 단체인 미국 고려인협회를 이끌면서 한미 친선 비영리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 미국 한인 단체 미주한인위원회(CKA) 등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