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家 한글 공부 노트부터 ‘밥퍼 운동’ 냄비까지 한자리

나눔의 정신 상징하는 냄비. 다일복지재단이 1988년 청량리역 굴다리역에서 노숙인에게 처음으로 라면을 끓여 나눠줄 때 사용했던 냄비가 전시돼 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내달 12일 개관…개신교의 빛과 그림자 함께 조명

1885년 헨리 아펜젤러·호러스 언더우드 선교사가 입국한 지 140주년을 맞은 가운데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이 다음 달 12일 문을 연다.

재단법인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이 정부와 서울시 지원을 받아 서울 은평구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천341㎡ 규모로 상설·기획전시장 및 수장고, 아카이브 등을 마련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했다.

연합뉴스는 개관을 앞두고 지난 17일 미리 전시물을 살펴봤다. 상설 전시장은 ‘신앙이 아름다웠던 순간들’이란 제목으로 한국 개신교 선교 초기부터 2000년대 초까지 활동을 대한제국 말, 일제 강점기, 광복 및 한국 전쟁 기간, 산업화·민주화 시기, 민주화 이행기 등으로 구분해 보여준다.

초기 선교사들의 활동과 관련해서는 한국어를 이해하고 익히는 과정에서 사용했던 물품들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 혹은 그 가족 중 한명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쓴 노트가 전시돼 있다.

서툰 필체로 한글을 적고 옆에 의미를 영어로 써 놓았다. ‘우연이'(우연히)라는 한글 옆에는 영문 필기체로 ‘언익스펙티들리'(unexpectedly·뜻밖에)라고 적혀 있다. 또 옛 표기로 쓴 ‘통촉하다’ 옆에는 ‘투 노우'(to know·아는 것)라고 기록됐다. 노트 작성자가 외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익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캐나다 출신 한국어 학자로 유명한 제임스 게일(1863∼1937) 선교사가 한국어를 영어로 풀이한 최초의 사전(초판 발행 1897년)도 전시돼 당시의 한국어를 살펴보는 데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언더우드 가문이 경영하던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의 수동 영문 타자기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형인 존 언더우드(1857∼1937)는 가업을 이어받아 연희전문학교 부지 구입을 지원하는 등 동생의 한국 내 선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와 관련해서는 개신교계의 저항과 일제에의 순응을 함께 다룬다.

‘독립운동 태극기’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태극기는 개신교계의 항일 의지를 알려준다. 이 태극기는 2009년 5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하다 발견됐고 후에 보물로 지정된 ‘서울 진관사 태극기’와 마찬가지로 일장기를 변형해 만든 것이다. 가운데 붉은 원을 덧칠해 태극 무늬로 바꾸고 4괘를 그려 넣은 형태로 돼 있다.

오늘날의 태극기는 4괘가 왼쪽 상단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건(乾)-감(坎)-곤(坤)-이(離) 순으로 돼 있지만 이곳의 태극기는 진관사 태극기와 동일하게 건-이-곤-감 순으로 배치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측은 이 태극기가 1910년대의 것이라며 당시 기독교인들은 종종 일장기에 먹으로 덧쓰거나 도장을 찍어 태극기로 변형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인회가 제작한 부채는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원한 어두운 역사를 보여준다. 앞면에는 일장기가, 뒷면에는 ‘국방 부인의 노래’와 ‘총후의 꽃’이라는 노래 가사가 적혀 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은 일장기가 그려진 부채를 다량 제작해 보내며 친일 운동에 동참한 교회들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산업화 시기 전시에서는 공장 노동자를 상대로 선교하며 이들의 권리를 옹호한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활동을 조명한다. 1956년 실시된 3대 대통령 및 4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통령선거추진 기독교도중앙위원회가 제작한 이승만·이기붕 지지 포스터도 전시하며 “기독교와 정부의 유착 관계를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1988년 청량리역 굴다리 아래에서 노숙인들에게 라면을 끓여 나눠주면서 시작된 다일복지재단의 이른바 ‘밥퍼 운동’을 상징하는 냄비와 소형 버너도 방문객을 기다린다. 라면을 끓여 나눠줄 때 최초로 사용한 낡고 찌그러진 냄비는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라는 성경 가르침을 웅변하는 전시물이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에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 관련 자료도 있다. 이 선언은 1988년 2월 29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제37회 총회에서 채택돼 남북 평화 담론을 도출하고 통일운동을 대중화하는 촉매제가 됐다.

2007년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한국교회봉사단이 기름 제거 작업을 하면서 입었던 작업복 등 개신교계가 당대 이슈나 사회 문제와 함께한 과정도 보여준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사무국장인 손승호 박사는 “기독교가 예수를 믿고 사후에 천당 가는 것만을 바라는 게 아니라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꾸기 위해 애를 쓰는 신앙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다만 좋은 이야기만 할 수는 없으니 반성할 것은 반성하자고 (전시물을 통해)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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