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는 ‘멕시코만’ 표기를 언급했지만, 사실은 주류 언론에 대한 트럼프 정부 핵심인사들의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불만들 때문에 AP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이는 기성 언론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려는 트럼프 정부의 시도 중 하나라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1846년 출범한 AP는 세계 최대 뉴스통신사로, 사실에 기반한 초당파적 언론을 표방하고 있다. 외부에서도 오랫동안 중립적인 언론의 표준으로 여겨져 왔다.
AP가 자체적으로 제작·발행하는 스타일북 역시 미국 언론은 물론, 다른 나라 언론인들도 기사 작성에 우선 참고하는 표준 지침서로 통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로 AP 스타일북이 성별, 이민, 인종, 법 집행 등에 관한 진보적인 어휘와 문구들을 선호한다는 공화당과 보수층의 주장을 받아들여 확대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은 AP 스타일북 내의 수천개 항목을 들며 불만을 제기해왔다.
AP는 스타일북에서 ‘트랜스젠더 주제를 보도할 때는 모든 입장을 포함해 이야기의 균형을 잡는다는 구실로 자격 없는 주장이나 출처를 제공하는 것을 피하라’고 권하는데 이를 비판하는 식이다.
AP가 기사에서 인종을 언급할 때 흑인은 첫 글자를 대문자(Black)로 쓰면서 백인은 대문자로 쓰지 않는 점(white)을 불쾌하게 여기는 보수 인사들도 있다.
AP는 소문자로 시작하는 ‘black’은 색상을 가리킬 때 쓰도록 하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하는 것처럼 ‘white’를 대문자로 쓸 경우 그들의 신념에 미묘하게 정당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AP는 ‘불법(illegal) 이민자’라는 용어 사용을 꺼린다. AP스타일북은 “불법은 사람이 아닌 행동을 지칭할 때만 사용하라. ‘불법 이민’이지, ‘불법 이민자’는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수성향의 논평가 테리 쉴링은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빗대 “오웰식의 모호하고 기만적인 신(新)언어”라고 주장했다.
반면, 성소수자단체 활동가 애슐리 브런디지는 AP의 ‘포용적 언어’ 사용 시도를 높이 평가하며, “공화당이 멕시코만의 이름을 바꾸는 것에 찬성한다면 트랜스젠더들의 어떠한 이름 변경도 허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AP는 지난달 23일 고객사 등에 배포한 안내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미국 안에서만 적용된다면서 멕시코를 포함해 다른 나라와 국제기관은 명칭 변경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또 전 세계에 뉴스를 공급하는 글로벌 뉴스통신사로서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새 이름을 인정하면서도 독자들에게 친숙한 새 이름 멕시코만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했다.
같은 달 28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첫 브리핑에서 AP 기자에게 첫 질문 순서를 주던 기존의 관행을 깨고 온라인 매체에 질문권을 주면서 AP를 비롯한 기성 언론들과의 싸움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9일에는 2월 9일을 ‘미국만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고, 이틀 후 백악관은 AP 기자의 집무실 행사 참석을 막았다.
테일러 부도위치 백악관 공보·인사 담당 부비서실장은 악시오스에 “이건 미국만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라며 “AP가 스타일북으로 언어를 무기화해 미국인과 전 세계인의 전통적이고 뿌리 깊은 믿음에 어긋나는 편파적인 세계관을 강요하는 것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