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광개토왕비 재현 영상·원형 가까운 탁본 공개
높이 7.5m 화면서 위용 그대로…1889년 자료 토대로 362자 보완
상설전시관 내 고구려실 2배로…최신 연구 성과 등 콘텐츠 강화
고구려의 전성기를 가져온 왕에게 후손들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칭호를 올렸다.
영토를 크게 넓히고 나라를 안정시킨 훌륭한 왕에게 바친 존경의 마음이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비석이자 4∼5세기 고구려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 광개토왕비가 디지털로 되살아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관 로비와 전시실 사이로 뻗은 ‘역사의 길’에서 디지털로 재현한 광개토왕비 영상과 원석(原石) 탁본 복원 자료를 선보인다고 24일 밝혔다.
광개토왕비는 광개토왕(재위 391∼412)의 아들인 장수왕(재위 413∼491)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414년께 세운 비석이다.
최대 높이 6.39m의 돌 4면에 총 1천775자를 새겼는데 고구려 건국 신화와 왕의 즉위, 광개토왕의 업적, 왕의 무덤을 관리하는 규정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박물관에서 새롭게 태어난 비석은 중국 지안(集安)에 있는 유물 모습 그대로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날 주요 업무 계획을 설명하는 간담회에서 “우리 역사를 담고 있지만 우리 국경 바깥에 있는 대표적 사례가 광개토대왕릉비”라며 전시 의미를 강조했다.
윤 관장은 “우리 고대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이 비석”이라며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한 이래 박물관이 추진하고 싶었던 과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높이 7.5m(받침대 포함 시 8m), 너비 2.6m 크기의 발광다이오드(LED) 기둥에는 사진과 영상 자료를 토대로 구현한 비석 모습을 각 면에서 볼 수 있다. 실물에 최대한 가깝게 표면 질감까지도 살렸다.
비석 영상과 함께 공개한 원석 탁본은 특히 주목할 만한 자료다.
원석 탁본은 비문에 석회가 칠해지기 이전에 뜬 탁본으로,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석회 탁본에 비해 연구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광개토왕비 원석 탁본의 경우, 현재 한국, 일본,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10여 종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 측은 지난해 한학자 청명(靑溟) 임창순(1914∼1999)이 소장했던 원석 탁본첩, 이른바 ‘청명본(本)’을 구입해 유물을 보존 처리한 뒤 고구려실에서 처음 공개했다.
청명본은 1889년 리윈충(李雲從)이 탁본한 것을 3글자씩 잘라 붙여 마치 책처럼 만든 형태다. 총 4책으로 구성된 자료는 탁본 과정을 담은 발문(跋文)이 있어 연구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청명본은 3·4면 일부가 빠져 있어 박물관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원석 탁본 사진을 활용해 362자를 보완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최근의 학계 연구를 볼 때 규장각본은 청명본의 일부가 분리된 것으로 여겨지며, 일본 자료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인물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청명본의 원본은 고구려실에서, 복원한 비문은 족자 형태로 ‘역사의 길’에서 볼 수 있다.
박물관은 탁본 공개와 더불어 고구려 역사·문화 콘텐츠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선사·고대관이 시작하는 구석기실부터 고구려실까지 약 1천613㎡(약 488평) 규모의 전시 공간을 새로 단장할 계획이다. 선사·고대관 내 여러 전시실을 한 번에 개편하는 건 2005년 용산 이전 후 처음이다.
특히 고구려 역사와 문화를 다룬 ‘고구려실’은 규모가 기존의 배로 늘어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선사·고대관을 관람한 만 15세 이상 남녀 21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관람객의 절반 이상(51.2%)은 가장 흥미로운 전시실로 고구려실을 꼽았다.
반면, 고구려실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답한 관람객들은 ‘유물 상당수가 다른 지역에 있어 전시된 유물이 많지 않았다’, ‘자료가 적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 관장은 “그간 학계에서 나온 연구·조사 성과를 반영해 콘텐츠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시간적 흐름에 따라 역사를 직관적으로 조망하도록 개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